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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평점 :
개인적으로 '진보'란 지금보다 나은 세상, 한 발 앞서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좀 더 발전한 사회를 바라지 않을까 의문을 품었다. 그 결과 이 책을 보면서 보수주의자들은 발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정책의 책임이 부족한 병든 진보주의로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 싫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아이앞에서 비둘기 마술을 하며 새를 으깨 쓰레기통에 넣고 아이는 절규하는 어떤 영화의 장면을 먼저 소개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진보 조차도, 희망찬 발전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정책과 미래에 맡겨 놓는 젊은이들이 실체를 목격했을 때, 분노와 실망을 표하는 현실을 비유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발전을 바랄 뿐만 아니라 위기를 대비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한다. 희망대로만 되는 진보란 없다.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필연적으로 실패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진보에 반대한다'는 제목은 정치를 모르고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오해하겠지만 저자는 정치 뿐만 아니라 키르게고르, 헤겔 등의 철학자를 언급하며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그들의 사상을 함께 버무렸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내용이지, 싶겠지만 읽다보면 조금씩 뜨끔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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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은 폭력과 죽음 없이 행해질 수 없지만, 그 마술의 효력은 희생된 존재의 비참하고 망가진 잔해를 숨기고 문제 삼을만한 사람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에 그 잔해를 버릴 것인지에 달려 있다. 여기에 변증법적 진보 개념의 기본 전제가 놓여 있다. 새롭고 더 높은 단계가 도래하면, 어딘가에 반드시 으깨진 새가 존재한다.
✍ 하지만 혁명 이후의 현실이 저녁 잔치보다도 못하다면 어쩔 것인가? 이 말은 우리가 진보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보를 재정의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첫걸음은 불편한 현실, 참혹하고 엉망진창이 된 현실마저 인정하는 것, 특히 수치스럽고 참담하며 구제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자본주의의 부패와 권위주의적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켜 줄 가짜 살아있는 새를 환영하면서 동시에 통 속에 숨겨진 으깨진 새들은 줄여야 한다.
✍ 진정한 진보를 가늠할 믿음직한 잣대 중 하나는 부정적 잣대이다. 윤리적 진보에서는 이전에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고문, 여성억압, 노예제) 단번에 불가능해지며, 누군가 이를 정당화 하려고 하면 괴상한 명청이로 보일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오늘날과 같이 고문을 허용할지 여부가 다시 공론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윤리적 퇴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진짜 진보적이고 역사적인 단절을 따른다면, 우리는 손쉽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계속 할 수도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동일한 관행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함의를 띄게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