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
김효수 지음 / 발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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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 정말 가슴 따뜻하고 많은 깨우침을 줘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림과 노력을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입양이라는 큰 결심을 하는 영인과 진건. 그들이 처음 가슴으로 받아들인 아들은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은 서글픔을 지녔었습니다. 다섯 살이 뭐 그리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꽃같은 영인과 등대같은 진건의 품안에 들어와서도 그들의 깊은 사랑과 정성을 받고서도 얼굴에는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동생이라도 있으면 나아질까 싶어, 영인과 진건은 몇 년 후로 계획했던 입양을 큰아들을 입양한지 1년만에 다시 합니다. 큰아들만큼이나 예쁘고 빛나는 다섯 살을요. 그들의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아들은 참 잘 맞았고, 큰아들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점이 있다고는 해도 예전에 자리했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꽃등대는 이어 셋째, 넷째도 입양합니다. 첫째와 둘째를 입양했을 나이의 다섯 살 사내들도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모, 형제들은 그렇게 가슴으로 진정한 가족이 됩니다.

 네 아들에게 하늘에 잠시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별 규성처럼, 별처럼 빛나라는 이름을 지어준 꽃등대. 그렇게 의젓한 설규휘, 멋진 설규황, 씩씩한 설규찬, 귀여운 설규란은 우애 좋은 형제가 꽃등대의 휘황찬란 네 아들이 되었습니다. 비록 영인이 배 아파 낳지도 않았고 피 한방울 섞이지도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은 네 아이들은 꽃등대가 지어준 이름만큼이나 별처럼 빛나는 휘황찬란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사내아이들로만 북적북적거리는 이 가족에 예쁜 옥공주가 가족으로 들어옵니다. 진건의 사촌조카의 딸 은옥이 말입니다. 재혼하는 어미로부터 버려진 아픔을 가진 눈물 많은, 예쁜 여자아이가요. 규희가 은옥의 눈물을 닦아준 그 순간부터 옥공주는 꽃등대에게는 예쁜 딸이, 휘황찬란에게는 지켜야할 예쁜 여동생이 됩니다. 

 정말 이런 가족이 있을까 했습니다. 물론 입양을 통해 제 혈육이 아닌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는 가족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멋진 가족이 실제로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가후기에 보니 진짜 이런 가족이 진짜로 있다고 합니다. 일곱 명의 아이를 입양한 레인보우 가족이, 꽃등대,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처럼 우애 좋고 행복한 자녀로 살아가는 따뜻하고 멋진 가족이 말입니다. 소설 속의 꽃 등대 영인과 진건도 그렇지만 레인보우의 부모님, 그리고 입양을 하는 많은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듯 가족애가 빛을 발하는 소설입니다. 제 혈육 간에도 싸워대고, 제 뱃속으로 낳은 아이에게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자행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가슴으로 이어진 이 가족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가족의 표상이 아닙니다. 남들이 제 가족에게 화살을 날리면 따라서 화살을 날리는 게 아니라 막아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응원해주는 꽃 등대, 휘황찬란, 옥공주 가족이 보여주는 가족애는 우리에게 가족이기에 가능한 사랑을, 가족이기에 잊지말아야할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는 단순히 가족애만 다룬 글이 아닙니다. 로맨스소설답게 예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친남매마냥 우애 좋은 7촌간인 규휘와 은옥의 힘든 사랑이 말입니다.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마음에 담지만 그들은 가족이기에, 꽃 같은 엄마 영인과 등대 같은 아빠 진건에게, 그리고 찬란한 형제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배신할 수 없어 제 마음들을 오랫동안 숨기며 살아옵니다. 때때로 장난이라 칭하며 서로의 마음을 내비치치만 참고 참습니다. 깊고 깊은 사랑을 하면서 망설이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너무도 안타까워 이들의 사랑을 응원했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해도 규휘와 은옥 곁에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건 그들에게도, 저에게도 생각되지 않았으니까요. 서로가 아니면 안 됐으니까요.  

 사랑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거부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이 있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규휘와 은옥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아팠습니다. 아무리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두 사람이기에,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도 애달프기에. 아무리 마음 좋은 꽃등대 영인과 진건이라도 우애 좋은 황찬란이라도 규휘와 은옥의 사랑을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규휘는 아들이자 형, 은옥은 딸이자 여동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이기에 화살을 날릴 수도 없었습니다. 남들이 날리는 화살보다 그들이 날리는 화살이 제 아이들에게 더 깊은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꽃등대,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지만 은옥이 스물 여섯이 되던 해, 그녀가 일곱 살 때부터 스물다섯까지의 가족과는 다른 의미의 가족이 됩니다.  

 입양이라고는 해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는 해도 가족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진짜 가족보다 더 깊게 나눴던 가족애를 생각하면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슴 안에 품고 오랜 시간을 아파해야 했던 사랑, 힘들 길인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과 누구보다 힘들게 받아들였을 그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결코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이해하실 수 없다는 분들 중 읽으셨는데도 그렇다면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개인의 사고가 작용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안 읽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형제 남매간의 우애, 애달프지만 예쁜 사랑이 스며있는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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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일기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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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작품으로 기억될, 난다와 현무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난다의 일기>. 이미 새드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비록 새드이나 <난다의 일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어나갔건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에, 난다의 귓바퀴가 젖어들 듯 내 귓바퀴 또한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고여 내가 흐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먹먹했다. 

 부모가 남겨준 과수원을 지키기 위해, 어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얼마만큼의 생이 남았는지도 알 수 없는 남자의 법적인 아내가 되고 그의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난다.   

 마음껏 꿈을 펼치고 사랑도 하고…… 한창 청춘을 예찬해야 할 나이에 숲속의 잠자는 왕자처럼 온실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한다며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지내는 현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슬프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이야기. 

“죽더라도 핏줄은 남기고 죽어라.”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분신인 아들 현무마저 자신 보다 먼저 보내야 하는 가혹하고 슬픈 운명에도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그 누구보다 강하게 대처하는, 이기적일지라도 아들의 핏줄 하나만큼은 세상에 두고픈 빅토리(이기자) 여사. 현무는 자신이 무슨 종마라도 된 것처럼 느꼈다지만 난 빅토리 여사의 선택이 단지 아들의 핏줄을 세상에 남겨두기 위한 것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제 핏줄을 보며 포기 하지 말고 병마와 싸워 이겨내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10개월,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기만 하는 게 그녀의 의무였지만 현무의 곁에서 그를 돌보는 난다. 그리고 점점 현무를 마음에 담게 되는 그녀. 까칠하게 굴고 심한 말을 일삼고 거리를 두는 현무에게도 끄떡하지 않고 현무에게 다가서는 난다를 보면서 참 강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모든 행동이 사랑스럽고 애절했으며 그녀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또 눈물이 났다. 

“현무 씨도 살고 싶고, 욕심 부리고 싶고 억지를 부리고 싶어지면 좋겠어요.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낳아준 아이가 아니더라도.” 

 난다의 바람처럼 삶에 대한 의욕을 가지고 다시 병마와 싸우기로 하는 현무……. 처절하고 안타깝고 예쁜 난다와 현무의 사랑, 병마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현무. 비록 현무가 오랜 시간을 난다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는 난다에게 세 아이와 그의 온실을 남겨주었다. 병마를 완전히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고 단란한 난다와 현무 가족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더 행복했겠지만, 10개월이라는 여명보다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를 위해 힘겹게 싸우며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사랑을 추억을 함께 한 현무의 강인한 모습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했고 만족했다. 남겨진 자들의 아픔이 아니라 먼저 간 이를 그리워하고 여전히 사랑하며 남겨진 이들끼리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그들을 본 것만으로…….

 사실 새드엔딩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몰입이 잘 돼서 새드엔딩을 읽고 나면 후유증이 커서 드문드문 생각이 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힘겨워하기 때문이다. <난다의 일기> 또한 읽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결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고, 너무나 아름다운 결말과 사랑이야기라 어떠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더라도 또 읽고 싶은, 여운이 남는 글이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사하는 심윤서 작가. 그녀의 필력과 꿈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중간 중간 자리한 난다의 일기, 그리고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아주 인상적이었고 글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했던 것 같다. 난초 난蘭, 소녀 다茶, 난다의 이름처럼 은은한 난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이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어서 리뷰를 쓰는 내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느낀 이 감동과 여운을 어떠한 말로 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와 달리 부족한 내 글솜씨로는 한계를 느꼈다. 그저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분들게 <난다의 일기>를 읽어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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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한 송이
정지원 지음 / 노블리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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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들여지다>의 남주였던 세진의 형인 선우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민들레 한 송이>. <길들여지다> 속 선우의 이미지는 바른 생활 사나이의 표본 같았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편모 가정의 장남이자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통해 성공을 꿈꾼다. 허투루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에 꼿꼿한 성격. <민들레 한 송이> 속의 선우도 그랬다. 사실 <길들여지다> 초반 부분을 읽을 때 선우에게 야속함을 느꼈었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말썽을 피웠던 세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동생인데 자존심을 건들릴법한 말로 구박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 좀 잘한다고 제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밥맛 없는 녀석, 이라고 살짝 미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진이 연예인의 길을 가게 되고 태영에게 제 동생을 맡기면서 혹시나 동생이 나쁜 사람의 꼬임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듯 태영에게 묻고 또 묻고,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여러 번 당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진에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시 제 동생을 아끼고 걱정하는 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민들레 한 송이>를 통해 그를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오래된, 지고지순한 사랑도 엿보게 되었다.  

민들레 같은 사랑을 한 여자 임정연.
그 사랑을 외면한 남자 조선우. 

 어느새 서른. 170㎝의 날씬하면서도 볼륨 있는 몸매에 예쁜 외모를 지닌 정연은 한정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재색을 겸비한 매력적인 여자이다. 십년 전 아프기만 했던 첫사랑의 흔적 이후, 외모 상관 없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그녀를 소중하게 다뤄줄 자상한 남자들을 만나온 정연이 솔로로 지낸 지도 6개월. 어디선가 남자 하나가 떨어졌으면 좋겠다 하던 그녀의 서른 번째 생일날 하늘에서 그녀의 기도를 들어줬는지 떡하니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에게 상처를 줬던 십년 전의 첫사랑 선우가. 

 여고생 때 선우는 정연의 과외 선생님이었다. 남루한 차림에도 당당하고 남자다우면서도 잘생긴, 진지한 남자인 선우에게 연심을 품은 정연은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그가 있는 대학에 법학부에 입학하고 심지어 그가 들은 복싱부에까지 입부하는데…….  

 정연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선우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꺾어도 다시 그 자리에 난다는 민들레처럼 일편단심으로 선우를 바라본다. 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듯 그녀의 마음이 들어간 자잘한 선물을 준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고 무뚝뚝한 선우이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만은 챙겨주는 그의 모습에 정연은 그녀가 선우를 좋아하듯 언젠가 그도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엠티 갔던 그 날의 선우와의 뜨거운 키스로 그와 사귀게 되었다고 믿었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그녀의 진심을, 사랑을 짓밟는 선우의 잔인한 거부. 그를 따라다니는 그녀가 기분 나쁘다고, 그녀가 귀찮고 짜증난다고……. 그렇게 상처를 줬던 그가 십년 만에 돌아와서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잔인하게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던 그에게 여전히 흔들리는 정연. 과거와 달리 그녀에게 매달리는 선우에게 시범주행을 해보겠다고 제안하는데……. 친구도 애인도 아닌 그저 하룻밤의 관계. 욕망을 충족하면 사라지겠지, 하던 흔들림은 선우와의 하룻밤으로 인해 더 크게 흔들린다.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몸매, 명석한 두뇌를 지닌 우월한 유전자 선우는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과거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마음껏 누리거나 즐기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과외를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그래서 한없이 그를 자극하고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린 여자 정연을 마음에 두고도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면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정연 모르게 그녀 주위를 맴돌다 유학을 떠났다.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동생인 세진이 했다고 생각해 자격지심 내지 자책감을 안고 살았던 선우―어머니 위암 수술, 치료비와 그의 유학자금을 마련한 세진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함―는 유학을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동료 연구원들과 의료기기 개발 회사를 세우고 크게 성공한 S&J 바이오테크의 대표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다. 세진에게 그가 졌던 빚을 갚고도 티도 나지 않을 정도의 통장 잔고에 정연에게 몇 백짜리 팔찌, 목걸이를 선물하고 스위트룸에 장기 투숙해도 아무 문제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서. 떳떳한 모습으로 십년 전에 잃었던 정연을 되찾고자 한다. 

 선우를 향한 제 감정을 옛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고 치부하며 그저 가벼운 만남만 가지겠다고 하는 정연이지만 어느새 선우에게 빠져들고 선우의 진심과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녀도 제 감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결혼하자는 선우의 말에, 자신의 커리어와 현실적인 결혼생활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고 고민을 하기도 하는 정연이지만 ‘그녀가 처음으로 하는’ 멋진 청혼으로 선우와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다. 

  지난 십년, 사랑에 대한 상처로 편안한 사랑만을 찾아 헤맸던 정연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 채 그저 가슴으로만 담고 돌고 돌아서야 사랑을 쟁취하게 된 선우. 정연에게 대학교 동아리 시절부터 민들레라고 불려왔다지만 비록 정연에게 상처를 주며 거부했다지만 정연 하나 밖에 모르는 외골수인 선우의 모습에서도 정연을 향한 그의 민들레 연심을 엿볼 수 있었다. 편모에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찍 철이 들어버린 선우이기에 제 속을 드러낼지도 모르고 감정 표현에도 인색했던 그이지만 정연과 재회 이후 그녀에게 사랑을 토로하고 숨겨뒀던 제 아픔과 사연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민들레 한 송이>도 캐릭터들이 참 좋은 글이다. 당당하고 솔직한 감성과 함께 매력적인 여성미까지 고루 갖춘, 현명한 여자인 정연도 멋졌고, 남자답고 진중하지만 제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선우도 매력적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주변 인물들도 멋진 캐릭터들. <길들여지다>에 찬웅이 있었다면 <민들레 한 송이>에서는 수현이 있었다. 선우로 인해 상처 입었던 정연을 달래주고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의 친구로 지내오며 결국 선우와의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는 교량 역할을 제대로 해준 캐릭터였다. 찬영과 마찬가지로 순수하면서도 어리바리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길들여지다>의 주인공인 세진과 태영을 볼 수 있는 것도 시리즈의 묘미. 여전히 태영스러운 모습의 태영와 팔불출 세진을 보면서 흐뭇했고, 왜소한 체구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했던 두 사람이 돌돌이의 부모가 된 것을 볼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선우와 세진, 한 형제이건만 전혀 다른 성격은 두 사람. 하지만 <길들여지다>에 이어 <민들레 한 송이>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외모만큼이나 비슷한 점도 역시 있다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나 제 앞가림 잘하는 당당한 여자를 사랑한 것이나 사랑에 목매고 팔불출이라는 점. 

십년을 돌고 돌아 다시 재회한 두 사람. 아니라, 했지만 그 십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전히 서로를 그렸던 정연과 선우의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이야기가 결국 결실을 맺는 <민들레 한 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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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다
정지원(김지원) 지음 / 노블리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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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원 작가의 <길들여지다>. 이 분의 글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지만 판타지가 되었든 가벼운 느낌의 현대물이 되었든 저마다의 캐릭터들이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는 것이다. <길들여지다> 속의 주인공인 세진과 태영도 흥미로운 캐릭터였고 그래서 이 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세진과 태영,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진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철부지 열여덟 소년이었다. 가정형편은 어렵고 공부도 적성에 맞지 않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돈 벌 생각만 하는 세진이지만 미성년자인 그가 제대로 된 돈벌이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곤 잘난 인물 정도. 그 덕에 꼬여드는 여자들도 많았고 실제로 즐기기도 한 그다. 종종 싸움도 하고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물만 믿고 설치는 문제아. 표면적으로 보이는 세진의 모습은 그렇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가벼워 보이고 제멋대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 같은 철부지인 그에게서 가족에 대한 끈끈한 정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위암 소식. 위로 다섯 살 터울이자 어머니의 기대를 독차지하는, 가장이나 다름없는 형이 있지만 형 또한 장학금으로 학교를 겨우 다니는 신세라 어머니의 수술비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세진은 돈을 벌기를 원했다, 간절히.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사람이 스물네 살의 부잣집 외동딸 태영이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나이트클럽에서 이루어졌다. 하룻밤을 같이 보낼 남자를 사러 왔다는 태영, 그녀의 마음에만 들면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웨이터 친구의 꾐에 넘어가 태영에게 자신을 사달라고 어필하는 세진. 그런 세진을 향한 태영의 반응은 흥미로우면서도 냉담했다. 하지만 결국 태영은 세진을 산다. 세진이 말한 잠자리 상대가 아닌 다른 의미로…….

 세진에게 있어 태영은 어머니의 치료비와 형의 학비와 유학자금 등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빌려준 채권자다. 볼 것 없는 열여덟 소년의 무엇을 보고 태영은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빌려준 것일까? 태영은 아름다운 소년이었던 세진을 처음 본 순간 매료되었었다. 도도한 척 무감각한 척하며 세진을 깔아뭉개기고 수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등 세진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해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가녀린 체구의 그녀는 세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조금씩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앤젤릭 인베스트(에이아이)’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SE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함과 동시에 세진을 SE에 집어넣고 그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세진을 잠자리 상대로 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꿈을 심어준 것이다. 그를 자신에게 가두지 않고 훗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만인의 연인이 되게 한 것이다.

 어머니와 형에게 항상 못미더운 아들이자 아우였던 세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그는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고 연기를 사랑하게 된다. 부모님이 주신 잘난 외모 덕을 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기 시작하고 작은 칭찬에도 기뻐하며 더 열심히 노력하는 그를 볼 때면, 역시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문제아였던 그였기에 스스로가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작은 칭찬도 그에게는 활력소가 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열정을 심어준 것 같다.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을 알아가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세진. 세진이 성공하는 데 있어서는 태영의 탁월한 사업적 수완도 빛을 발했다. 잊히기 쉽고 묻히기 쉬운 곳이 바로 연예계란 곳. 그런 연예계에 세진을 들여놓고 시기적절한 센스로 세진을 톱 탤런트로 이끄는 태영이다.

 세진이 톱 탤런트로 들어서기 전, 아직 새내기일 적에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사업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사적으로도 두 사람이 연결된 것. 그녀의 선택이었음에도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세진에 더 외로워지는 태영은 세진을 만나고서 그만뒀던 일탈을 다시 시작하려 하고 그에 질투를 느낀 세진이 결국 태영을 탐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도 시작된 것이다.

 주종관계,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 세진은 자신의 그런 위치가 싫었다. 그가 빚을 졌다는 이유로 뭐든 제 인생을 마음대로 하려한다며 태영을 증오한다. 그녀를 탐하면서도 그녀에게 진 빚만 갚으면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겠다는 말을 담고 사는 세진. 하지만 정작 8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진 빚을 이자까지 쳐서 다 갚으며 그녀와 더 이상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상태가 되었을 때 오히려 속 시원함이 아닌 허탈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태영이 아니라 스스로가 싫었던 것이다. 비록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톱스타가 되었지만 여전히 태영은 그에게 닿기 힘든 존재. 그런 자신의 처지를 느끼게 하는 태영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영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줬다. 제 감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어리석게.

 태영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의 잘못된 사랑이 낳은 교통사고로 오빠를 잃고 다리를 다친 그녀. 수술이 잘 되었음에도 여전히 한쪽 다리를 절고 자그마한 충격에도 아파하는 그녀. 육체는 나았지만 마음이 병들어 여전히 다리를 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종이를 수없이 찢어버리는 편집적인 증상을 보이는 태영. 겉으로는 강한 척 독한 척 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가녀린 체구만큼이나 간간히 여린 면모를 보이는 그녀가 때때로 안쓰러웠다. 사랑이라는 것에 회의적이어 방황을 했던 태영은 세진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집착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오빠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봐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세진에게 내쳐지는 게 두려워 먼저 손을 놓으려고 한다.

 채무관계가 끝이 나고 모든 것에 지친 태영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고자 한다. 제지회사 회장의 둘째 아들 찬웅과. 누가 됐든 결혼을 할 결심을 하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실제로 만나본 찬웅은 괜찮은 남자였다. 남을 잘 믿어 손해를 많이 보는 어리바리한 남자이지만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 주는 자상한 면을 가진 찬웅. 그런 보살핌과 애정을 받아본 적 없던 태영은 결국 찬웅과의 결혼을 서두르고. 그 과정에서 세진은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면서 태영에게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지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길들인 태영을 길들이고자 하는 세진. 그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태영.

 <길들여지다>의 주인공인 세진과 태영은 겉으로 봤을 때는 성격이나 환경적인 면이 아주 대조적인 인물들이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거칠고 제멋대로인 철부지이지만 구김살 없고 밝은 세진과 부잣집 딸로 많은 것을 누렸지만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냉정하며, 남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으며 어둠을 간직한 태영. 그런 정반대의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다. 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서로가 가지지 않은 매력에 끌린 것일지도. 불완전하기만 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완전함을 느낀 것일지도.

 전체적인 스토리를 봤을 때는 새롭다, 처음 보는 글이다 그런 류의 글은 아니다. 그럼에도 <길들여지다>를 보면서 신선함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역할이 바뀐 듯한 남주와 여주의 상황도 재밌었고 기존의 로설에서 봐왔던 여주나 남주 캐릭터와 많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대개 로설에서 여주는 성격이 어떻게 됐든 예쁜 외모를 지니고 남주는 재력이나 지적으로 모자람이 없으며 카리스마를 지닌 완벽한 남자의 표상으로 그려졌는데 <길들여지다>의 태영과 세진은 달랐다.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외모에 150cm 정도에 소말리아 난민을 떠올리게 하는 깡마른 체구의 태영과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카리스마 보다는 개구쟁이 같은 친근함을 지닌 세진. 재밌는 조합이라고 할까. 찬웅을 비롯한 조연들도 흥미로웠고, 태영과 세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토리 전개나 강렬하면서도 가벼운 듯한 느낌의 스토리도 재밌게 와 닿았다. 스토리만 보면 기존 로설에서 여러 번 봐왔을 법한 것임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와 작가의 감각적인 필력과 심리묘사가 매력적이고 재밌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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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
김혜연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산뜻한 표지와 절로 흥얼거리게 하는 제목처럼 <허밍>은 산뜻하면서도 유쾌한 글이었다. 독특하면서 개성적인 캐릭터인 여주 어수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풀어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했다. 유쾌한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후기에 적힌 작가의 말처럼 유쾌한 로맨스를 잘 그린 소설로 악조의 등장이 없어 눈살 찌푸릴 필요 없고, 수선과 남주인 이준 두 사람의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선은 어느덧 서른세 살을 맞이한 노처녀이다. 로맨스소설 작가답게 그녀의 인생에 비풍초똥팔삼의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 믿으며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는 그녀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절친인 유신과 나누는 삼십대 여자들의 적나라하면서도 솔직한 대화를 보면 연애경험 다분해 보이는 수선이지만 실제로 그녀는 연애다운 연애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이론만 빠싹한 여자이다. 모델 포스 나는 몸매에 아름다운 외모에 털털하면서도 유쾌한 성격을 지녔음에도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그녀에게 드디어 심장이 두근두근 허밍하는 사랑이 찾아든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인 논산에 들린 수선은 으레 노처녀라면 겪을 친척들의 결혼 종용에 시달린다. 한 통의 구원 전화를 받고 동창모임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수선은 그녀의 풋내 나던 순정에 생채기를 낸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웃해 사는 이웃사촌이자 소꿉친구였던 동갑내기 현이준.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공부 및 운동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었던 엄친아에 현재는 명문대 국문과 교수인 그. 수선은 모친인 숙희로부터 그와 늘 비교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한 번도 그 점이 불만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그를 제 일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열다섯 어느 날에 날아온 이준의 비수 같은 말에 상처를 입은 수선은 그에 대한 마음도 접고 눈길도 거뒀었다. 오랜만의 재회. 그 재회가 다시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서로가 첫사랑이고 오랫동안 연심을 품어왔으면서도 제대로 표현 한 번 해보지 못하다가 오해로 18년을 돌아서 다시 만난 수선과 이준. 풋내 나던 열다섯이 아니라 서른세 살이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척 하지만 슬쩍슬쩍 드러나는 그들의 마음을 숨길 수 없는데……. 술김에 보낸 첫날밤은 그동안 애써 부정하며 막아왔던 마음에 물꼬가 트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두 사람의 심장은 서로를 향해 허밍하기 시작한다.  

  순수했던 시절, 늘 붙잡고 다녔던 손을 놓게 되고 서로에 대한 시선을 거뒀었지만 부모님을 통해 들려온 서로에 대한 안부에는 항상 귀를 열어놓았던 수선과 이준. 서로에게 틱틱거리며 까칠하게 굴지만 오랜만의 재회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둘은 술김에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사족을 더하자면 술에 떡이 된 수선과 달리 이준은 그리 취한 상태가 아니었으니 그가 자제하던 이성의 끈을 놓고 숨겨져 있던 늑대본성을 발휘해 기회를 잡았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꿈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실제임을 알게 된 수선은 당황하고 자존심에 실수였노라 말하며 잊자고 하고, 오래도록 사랑해왔던 수선을 드디어 제 여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던 이준은 그 말에 상처받아 그러겠노라 하지만……. 연락도 내색도 않는 서로에 속이 타고 신경 쓰이는 두 사람은 결국 진심을 토로하고 연인이 되는데.

 연애의 시작이 술김에 가진 첫날밤에 이뤄졌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선에게 향하는 갈망을 애써 잠재우며 평범하면서도 건전한 연애를 해내가는 이준. 그에 수선은 수선대로 이준은 이준대로 욕구불문에 힘들어 하지만 결국 수선의 유혹과 앙탈에 그것도 끝에 이르니. 누가 알았을까, 수선이 잠자는 늑대의 본성을 깨웠다는 것을!  

 수선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제라는 것을 모르는 이준은 짐승남, 절륜남의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기에 이른다. 건전을 표방하던 그가 수선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데 심취하는 모습은 뭐랄까 하나의 반전이었으며 흐뭇한 상황이기도 했다. 제 여자에 대한 진한 소유욕과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참 좋았다. 수선이야 상상도 못한 이준의 변화에 과감한 애정행각에 놀라고 힘들어 하지만 말이다. 

 순조로운 그들의 연애, 점점 깊어지는 마음.
결혼을 결심하고 청혼을 준비 중인 이준의 마음을 모른 채 수선은 혹시나 다가올지도 모를 이별을 걱정하며 불안해 한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의 관계가 양가 부모님에게 들키게 되기에 이르고 뜻하지 않은 반대와 부딪히게 된다. 사윗감으로 넘치면 넘쳤지 모자랄게 없는 이준을 반기는 숙희와 달리 이준의 모친인 연숙은 제 전부이자 자랑인 아들과 견주어 수선이 탐탐치 않기만 하다. 그로인해 절친했던 숙희와 연숙의 관계에 금이 가고, 수선은 수선대로 이준은 이준대로 양가의 반대에 힘겨워 한다. 과거 그들의 오해의 중심이었던 윤환 선배의 등장으로 이준의 질투를 자극하면서 고비를 맞이하기에 이르지만, 임신 해프닝과 윤환의 고백에 수선과 이준은 오해를 풀게 된다. 더불어 서로가 첫사랑이자 애써 부인해오긴 했었지만 그 마음이 한 번도 변치 않았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기에 이른다. 

 ‘어수선 속, 사차원 행동수칙’ 원제처럼 수선이 보여주는 행동수칙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일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꿈꿔왔던 사랑을 이룬 수선을 보면서 기뻤다. 이 맛에 로맨스소설을 놓을 수 없다는 것! 

 개성적이면서도 유쾌한 어수선이라는 여자와 그녀가 던지는 사차원적인 대사와 표현력은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실제 작가 또한 그러한 의도로 표현했을 테고.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수선의 표현력과 사고방식은 많은 웃음을 유발했고 유쾌했다. 솔직히 몰입이 채 되지 않은 첫 몇 페이지를 읽을 때는 수선과 유신의 말장난이 과하게 들려 몰입을 방해하고 거슬려 아쉬웠기도 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 친구들이 만났을 때 그렇게 말장난 식으로만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으니 현실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에. 하지만 차츰 적응 되고 적당한 상황에서 등장해 웃음 포인트를 작용해 실컷 유쾌함을 즐길 수 있었다. 

 <허밍>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어서 좋았다. 수선과 이준 두 사람 다 한 번씩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 답답했던 적도 있긴 했었지만 개개인을 봤을 때도 매력적이었고, 연인이 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모습에선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준이 갈수록 멋지게 느껴졌다. 수선과 이준 부모님을 통해 인간적인 부분도 녹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수선과 이준의 절친인 유신과 지호 두 사람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더 등장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수선과 이준이 주인공인 만큼 수선과 이준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게 당연한 듯싶다. 대신 외전에서 살짝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지막에 수선과 이준의 2세 라운과 유신과 지호의 2세 민우가 등장했는데, 과거 수선과 이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끔 하는 소꿉친구인 두 아이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드세고 고집쟁이에 골목대장답게 한 주먹 하는 라운을 좋아하는 민우의 사랑이 과연 이루어졌을지 무진장 궁금하다. 외전에서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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