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밍
김혜연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산뜻한 표지와 절로 흥얼거리게 하는 제목처럼 <허밍>은 산뜻하면서도 유쾌한 글이었다. 독특하면서 개성적인 캐릭터인 여주 어수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풀어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했다. 유쾌한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후기에 적힌 작가의 말처럼 유쾌한 로맨스를 잘 그린 소설로 악조의 등장이 없어 눈살 찌푸릴 필요 없고, 수선과 남주인 이준 두 사람의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선은 어느덧 서른세 살을 맞이한 노처녀이다. 로맨스소설 작가답게 그녀의 인생에 비풍초똥팔삼의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 믿으며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는 그녀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절친인 유신과 나누는 삼십대 여자들의 적나라하면서도 솔직한 대화를 보면 연애경험 다분해 보이는 수선이지만 실제로 그녀는 연애다운 연애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이론만 빠싹한 여자이다. 모델 포스 나는 몸매에 아름다운 외모에 털털하면서도 유쾌한 성격을 지녔음에도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그녀에게 드디어 심장이 두근두근 허밍하는 사랑이 찾아든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인 논산에 들린 수선은 으레 노처녀라면 겪을 친척들의 결혼 종용에 시달린다. 한 통의 구원 전화를 받고 동창모임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수선은 그녀의 풋내 나던 순정에 생채기를 낸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웃해 사는 이웃사촌이자 소꿉친구였던 동갑내기 현이준.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공부 및 운동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었던 엄친아에 현재는 명문대 국문과 교수인 그. 수선은 모친인 숙희로부터 그와 늘 비교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한 번도 그 점이 불만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그를 제 일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열다섯 어느 날에 날아온 이준의 비수 같은 말에 상처를 입은 수선은 그에 대한 마음도 접고 눈길도 거뒀었다. 오랜만의 재회. 그 재회가 다시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서로가 첫사랑이고 오랫동안 연심을 품어왔으면서도 제대로 표현 한 번 해보지 못하다가 오해로 18년을 돌아서 다시 만난 수선과 이준. 풋내 나던 열다섯이 아니라 서른세 살이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척 하지만 슬쩍슬쩍 드러나는 그들의 마음을 숨길 수 없는데……. 술김에 보낸 첫날밤은 그동안 애써 부정하며 막아왔던 마음에 물꼬가 트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두 사람의 심장은 서로를 향해 허밍하기 시작한다.  

  순수했던 시절, 늘 붙잡고 다녔던 손을 놓게 되고 서로에 대한 시선을 거뒀었지만 부모님을 통해 들려온 서로에 대한 안부에는 항상 귀를 열어놓았던 수선과 이준. 서로에게 틱틱거리며 까칠하게 굴지만 오랜만의 재회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둘은 술김에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사족을 더하자면 술에 떡이 된 수선과 달리 이준은 그리 취한 상태가 아니었으니 그가 자제하던 이성의 끈을 놓고 숨겨져 있던 늑대본성을 발휘해 기회를 잡았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꿈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실제임을 알게 된 수선은 당황하고 자존심에 실수였노라 말하며 잊자고 하고, 오래도록 사랑해왔던 수선을 드디어 제 여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던 이준은 그 말에 상처받아 그러겠노라 하지만……. 연락도 내색도 않는 서로에 속이 타고 신경 쓰이는 두 사람은 결국 진심을 토로하고 연인이 되는데.

 연애의 시작이 술김에 가진 첫날밤에 이뤄졌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선에게 향하는 갈망을 애써 잠재우며 평범하면서도 건전한 연애를 해내가는 이준. 그에 수선은 수선대로 이준은 이준대로 욕구불문에 힘들어 하지만 결국 수선의 유혹과 앙탈에 그것도 끝에 이르니. 누가 알았을까, 수선이 잠자는 늑대의 본성을 깨웠다는 것을!  

 수선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제라는 것을 모르는 이준은 짐승남, 절륜남의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기에 이른다. 건전을 표방하던 그가 수선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데 심취하는 모습은 뭐랄까 하나의 반전이었으며 흐뭇한 상황이기도 했다. 제 여자에 대한 진한 소유욕과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참 좋았다. 수선이야 상상도 못한 이준의 변화에 과감한 애정행각에 놀라고 힘들어 하지만 말이다. 

 순조로운 그들의 연애, 점점 깊어지는 마음.
결혼을 결심하고 청혼을 준비 중인 이준의 마음을 모른 채 수선은 혹시나 다가올지도 모를 이별을 걱정하며 불안해 한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의 관계가 양가 부모님에게 들키게 되기에 이르고 뜻하지 않은 반대와 부딪히게 된다. 사윗감으로 넘치면 넘쳤지 모자랄게 없는 이준을 반기는 숙희와 달리 이준의 모친인 연숙은 제 전부이자 자랑인 아들과 견주어 수선이 탐탐치 않기만 하다. 그로인해 절친했던 숙희와 연숙의 관계에 금이 가고, 수선은 수선대로 이준은 이준대로 양가의 반대에 힘겨워 한다. 과거 그들의 오해의 중심이었던 윤환 선배의 등장으로 이준의 질투를 자극하면서 고비를 맞이하기에 이르지만, 임신 해프닝과 윤환의 고백에 수선과 이준은 오해를 풀게 된다. 더불어 서로가 첫사랑이자 애써 부인해오긴 했었지만 그 마음이 한 번도 변치 않았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기에 이른다. 

 ‘어수선 속, 사차원 행동수칙’ 원제처럼 수선이 보여주는 행동수칙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일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꿈꿔왔던 사랑을 이룬 수선을 보면서 기뻤다. 이 맛에 로맨스소설을 놓을 수 없다는 것! 

 개성적이면서도 유쾌한 어수선이라는 여자와 그녀가 던지는 사차원적인 대사와 표현력은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실제 작가 또한 그러한 의도로 표현했을 테고.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수선의 표현력과 사고방식은 많은 웃음을 유발했고 유쾌했다. 솔직히 몰입이 채 되지 않은 첫 몇 페이지를 읽을 때는 수선과 유신의 말장난이 과하게 들려 몰입을 방해하고 거슬려 아쉬웠기도 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 친구들이 만났을 때 그렇게 말장난 식으로만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으니 현실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에. 하지만 차츰 적응 되고 적당한 상황에서 등장해 웃음 포인트를 작용해 실컷 유쾌함을 즐길 수 있었다. 

 <허밍>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어서 좋았다. 수선과 이준 두 사람 다 한 번씩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 답답했던 적도 있긴 했었지만 개개인을 봤을 때도 매력적이었고, 연인이 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모습에선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준이 갈수록 멋지게 느껴졌다. 수선과 이준 부모님을 통해 인간적인 부분도 녹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수선과 이준의 절친인 유신과 지호 두 사람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더 등장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수선과 이준이 주인공인 만큼 수선과 이준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게 당연한 듯싶다. 대신 외전에서 살짝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지막에 수선과 이준의 2세 라운과 유신과 지호의 2세 민우가 등장했는데, 과거 수선과 이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끔 하는 소꿉친구인 두 아이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드세고 고집쟁이에 골목대장답게 한 주먹 하는 라운을 좋아하는 민우의 사랑이 과연 이루어졌을지 무진장 궁금하다. 외전에서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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