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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5년 기자생활을 접고 고향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녀에게 우선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끊긴 길은 잇고 없던 길은 만들고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제주 올레 (작은길, 좁은길, 좋은길).
그녀가 쉰이 다 되어 시작한 일에 우선 감동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고향인 제주를 걷기여행지로 만드는데, 2007년 9월 개장하여 현재는 12코스까지. 이 책에는 12코스까지 나와 있지만 지난 5월에 갔을 때 공항 안내소에서 받아 본 올레 안내 약도에는 14코스까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올레길 확장에 쏟는 그녀의 쉼 없는 열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각 코스를 열 때마다 겪었던 웃음과 울음과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 천천히 아껴서 읽고 또 읽고 계속 읽고싶은 책이다.
'올레길'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 것은 2008년 12월, 제주에 가서 택시 기사분께였다. 그 때 생전 처음 혼자서 제주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 전에도 몇 번 가 보긴 했지만 주로 누구누구랑 렌트를 하거나 패키지로 가거나! 그런데 결단을 내린다. 혼자 가는 제주 여행! 10여 년 전에 우도에 갔을 때 풍랑을 만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도가 항상 눈에 밟혔고 그 즈음 해결되지 않는 머리 복잡한 일도 있었다. 우도에 가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염원! 그런데 시간내기가 수월치 않아 이생진님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만 끼고 살다가 ‘지금이 아니면 못 가’ 하는 생각에 당장 짐을 싸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만큼 장기간 여행은 아니다. 3박4일, 그래도 직장인에게는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제주 우도에 가서 평생 맞을 바람과 상쾌한 공기를 흠찐 들이킨 후, 택시로 섭지코지로 들어간다. 두 어번 와 봤지만 혼자 와서 호젓하게 느끼니, 색다른 맛이다. 겨울 저녁때가 되니 금방 해가 뉘엿뉘엿, 그런데 돌아갈 차가 없다. 택시도 이미 예약한 손님의 것이고, 아~난감! 할 수없지! 걷자. 걸어서 가자. 그 고요한 섭지코지 주변길을 40여 분 걸었을 때 어두컴컴 좀 무섬증이 나기도 한다. 가는 차 잡아서 히치 하이킹?? 아~ 조금 자신이 없다. 할 수도 있지만, 이왕 걸어온 것, 계속 걷자. 그러다가 모범택시 기사분이 차를 세운다. 흥청한 끝에 성산포 버스 정류장까지 가기로 차에 오른다. 겨울바람이지만 제주 바람은 그 속에 부드러움이 있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은 그 바람이 춥단다. 나한테는 어림없다. 서울의 겨울바람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기사분이 혼자왔냐고 해서 그렇다 했더니 대단하다며 하긴, 요즘은 올레때문에 육지에서 배낭매고 많이들 온다고 한다. 처음 듣는 말. '올레'?? 그게 뭐지?
"네??올레요? 올레가 뭐예요?" 후훗. 그랬었다. 아 있잖아요, 인터넷같은 데서 사람들 만나서 제주도 걸어서 다니는 것, 요즘 유행이던데......, 네? 나는 계속 궁금했다. 올래? 갈래?의 반대말인가? 아저씨 올래에서 ‘래’가 ‘ㅏ,ㅣ’에요? ‘ㅓ,ㅣ’에요? 물어 볼려다가 그냥 머리에 담고 서울로 올라온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 ‘제주 올레’를 검색하고 그때서야 아하~했으며 한 눈에 반하고 만다. 제주시에서 주최한 것이 아니라 개척자가 서명숙임을 알고 그녀의 책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 과도 만나게 된다. 그 순간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석 달 뒤인, 3월에 제주 올레길로 떠났으며, 그 때부터 올레길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나는 제주 여행과 제주 올레길을 구분하기로 한다.
내가 처음 갔던 1코스. 버스에서 출발지 시흥리에 내리던 순간, 쿵,쾅,쿵,쾅,쿵쾅쿵쾅......,정말 내 심장이 그랬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시흥리에 펼쳐진, 죽어서도 잊지 못할 종달리 마을에서의 유채꽃과 부드러운 광풍! 광풍에 땅바닥에 누울 듯 흔들리는 유채바다와 갈대바다. 이 책을 보며 올레길 첫코스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1코스는 꼭 봄에 가기를! 평생 볼 유채꽃에 묻히게 될 테니까!
길을 걸을 때마다 이 길이 만들어진 책 속의 사연이 자꾸 떠오르며 마치 역사탐방이라도 간 듯. 자꾸 설렌다. 올레는 하루에 한 코스 정도가 적당하다. 쉬멍 놀멍 걸으면 5~6시간은 족히 걸리므로 2박3일로 떠나면 두 코스정도 걷는다. 그 후 난 올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5월에 다시 한 번 떠나 두 코스 걷다가 왔다. 걷기여행의 참맛, 진수를 느끼며!
요즈음 아침 저녁으로 가을바람이 선선하면서 여름동안 잠 자던 올레 바이러스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와랑와랑한 제주 햇살 속을 또 걷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은 올레길을 다 완주할 때까지 내 손에서 놓지 못할 듯하다.
반가운 제주 올레 사인, 여행자의 등대, 가이드, 표지판. 네비게이션.
푸른화살표와 리본. 푸른색은 제주의 푸른바다를, 노란색은 귤을 상징한단다. 자연친화적인 이것만 있으면 제주 전역이 눈에 훤하다. 어디를 가든 두려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