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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뜨려는 배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어떤 사람이 볼 때는 '사서 고생'이다. 구식 배, 범선을 타고 바다를 여행한다는 것. ‘안 뜨려는 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바다와 배에 대하여 낭만을 품었던 주인공, 모왓(모왓의 자전적인 소설)씨는 1900년대 이전의 구식 항해 용구들을 경매로 모조리 사들인다. 그리고 구식 배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의 섬 뉴펀들랜드로 떠난다. 배안의 시설과 색깔, 선구들은 엉망이지만 작고 귀여운 구식 배를 구입하고 수선하는데만 수 개월이 걸린다.
배로 여행하는 설렘이 없었다면 수선하는 과정에서 진즉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얼추 항해하기 알맞게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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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배의 이름은 ‘해피어드벤처호’ 잭이라는 친구와 함께 시작된 항해는 배도 사람도 익숙하지 않으므로 삐그덕이다. (여행이란 것이 그렇다.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가는 것이다.) 해적보다 더 무서운 안개와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데, 처음 부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가 아니다. 고됨의 연속. 여행이라기 보다는 바다와 안개와 사투를 벌이는 광경이 훤하다. 그것도 여행의 일부라면 또 그렇겠지만.
여행할 때는 동행자의 선택도 중요하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잭’이라는 사람, 왠지 구식배로 구식 여행을 하기에는 문명의 편리함과 깔끔함에 너무 익숙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여행을 정의하자면 여행은 ‘집 떠나 고생’ 이다. 안락함의 끝, 고생시작! 때로는 길에서 웅크린 잠을 자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생명에 위협을 감수하기도하고 뭐,그런 것!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모왓이라는 사람은 그 정도면 구식 여행에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중간에 들른 항구에서 사업문제로 떠나야 했던 잭과 교체되는 승무원, 마이크 라는 사람, 도서관 관리국장이라는 마이크는 잭의 소개로 항해에 합류하게 되는데 참 낙천적이다. 우유부단하지 않다면 여행에 동행하는 사람은 낙천적일수록 좋다. 마이크는 평생 세 번의 항해 경험이 있지만 누구보다 바다자체와 바다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관심있는 분야로의 여행이라면 고생도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
여행할 때 길러지는 것, 필요한 것, 바로 임기응변 기술이다. 기술? 임기응변은 누구에게 배워서 써 먹는 기술은 아니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지혜에서 발휘되는 재치! 처음부터 지혜를 가지고 여행하기보다는 여행을 통한 예기치 못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경우가 많다. 배보다 3미터나 더 긴 상어를 만났을 때, 해피어드벤처호는 상어의 등 위를 통과하게 되는 데 그때 식수를 모두 잃고 만다. 다음 항구까지는 꽤 긴 시간이 남았고, 그 때 마이크는 럼주(술)로 커피를 끓여 갈증과 추위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술로 끓인 커피를 마셔 보셨는지? 어떤 맛일지, 오묘한 음료맛이 아닐까! 상어를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술로 만든 커피맛을 볼 수 있었을까!
중간 중간 항구에 정박해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 사람들과의 식사와 대화, 해피어드벤처호 정검과 수선에 대하여 주고 받는 도움.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부분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 여행을 선망하고 삶의 목표로 정하기도 한다. 교통의 발달(특히 비행기)로 어디든 못 가는 나라가 없다. 국내에서만도 고속열차까지 등장하여 기회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편리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럴 때 고생도 즐거움의 일부라 여기며 사라져가는 옛날 방식으로 여행을 해 보는 것, 그것도 값진 경험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