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 떠난 이를 위해 수행의 마음을 내다
효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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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집 안에 제청을 만들고 아침 저녁으로 새 잿밥을 올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삼우제(장례를 치른 후 삼일째 지내는 제사)까지 그리 하지 않았나 싶다.  ‘삼우제’라는 말과 ‘사십구재’라는 말은 어렸을 적부터 참 많이 들었다.  아버지가 단정히 차려 입고 누구누구네 삼우제 다녀오겠다, 사십구재 다녀오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집을 나섰던 기억도 또렷하다.

  어렸을 적 우리집은 많은 제사를 모셨다.  조부모에서 증조부모까지 심지어 후손없는 이웃사람의 제사까지.  "낼 모래 제사지내야한다." 엄마 말씀. "무슨 제사? 얼마 전에 지냈잖아."우리 딸들 질문. "응, 이번에는 저 동네 불쌍한 양반 제사야."  "왜 우리가 옆 동네 사람 제사까지 지내는데?" "그 양반은 자식이 없어서 불쌍한 양반이니까 우리가 깨끗하게 밥 한그릇 올려 드려야지."  어린 마음에 엄마가 참 이상하다 생각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지내다 지내다 이제 ‘후손없는 집 양반’의 제사까지? 

 

  제사 지내는 것에 예민한 이유는 그 제사 음식 장만을 우리(딸들)가 도맡아야했기 때문이다.  나물 다듬기, 전 부치기, 엄마 잔심부름 등.  한 여름이나 한 겨울일 때는 그 준비가 참 힘들어서 어린 마음에 또 결심했다.  제사 많이 지내는 집, 장남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을테야.......,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과 연민이 참 많으신 분이었다.  당신보다 못한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돌아가신 분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추모의 예를 다하신 것 같다.


  효림스님 말씀대로라면 우리 엄마는 돌아가신 후에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그 복을 누리실까!  어릴 때부터 익숙한 ‘사십구재’  사람이 죽은 후 49일만에 지내는 제사.  ‘사십구재’에서 ‘재(齋)’가 ‘제사 지내다’할 때 ‘제(祭)’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로다. ‘齋’는 ‘공경하다’‘공손하다’‘엄숙하다’‘재공양’ 할 때 쓰이는 ‘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글자는 불교의 전문 용어로서 부처님이나 또는 도덕이 높은 스님들께 무엇인가 공양물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의 글자이며 사십구재란 돌아가신 영가(靈駕)에게 공양물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십구재, 죽은이에 대하여 살아서의 희노애락을 다 잊고 평온한 영혼으로 평안히 잠들기를 바라는, 종교나 이념을 떠나서 남은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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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도법.김용택 지음, 이창수 사진, 정용선 정리 / 메디치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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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찾다가/텃밭에/흙묻은 호미만 있거든/섬진강 봄물을 따라/매화꽃 보러 간줄 알그라.//

  김용택이라는 시인의 이름보다는 ‘섬진강 시인’으로 더 알려진 그의 시 ‘봄날(3월)’이다.  봄의 시작은 남도의 꽃잔치에서부터다.  섬진강가에 소복히 피어나는 매화와 노란 산수유꽃!  나는 봄이 되면 섬진강의 봄꽃을 찾아간다.  하얗게 흐드러진 매화꽃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시인 김용택이다.  매화꽃 없는 섬진강을 상상할 수 없으며 김용택 시인이 없는 섬진강 또한 싱겁다.  그의 시와 글을 읽을 때면 절로 미소가 나기도하고 코끝이 찡해오기도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의 글에 금방 동화되고 마는 이유는! 맛깔스런 전라도 사투리? 소탈하고 수수한 그의 미소? 그의 작품 소재인 자연과 아이들의 순수함? 그 모든 것?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농자금으로 돼지와 오리를 길렀던 영농인 김용택은 결국 모든 것을 접고 서울행, 다시 귀향.  스무 살 시절,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선생 시험’을 보게 되고 이웃마을 분교에 교사가 된다.  교사가 된 후부터 책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아무도 못 말리는 다독가가 된다.  적은 월급으로 다섯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했던 가난한 그는 1979-1995년까지 책을 외상으로 들여다 읽었으며 그 책값은 1995년이 되어서야 다 갚았단다.  얼마나 지독한 책벌레였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문학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그들을 향한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책을 통하여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시인.  전교조 선생들과의 만남과 고뇌, 김남주 안도현, 도종환 시인들과의 귀한 만남, 섬진강 시를 발표한 후 여기저기서 감시를 받게 되는 이야기,  시인만큼 자연을 닮아 살아오신 대장부같은 어머니 이야기. 읽다보니 또 살살 재미난 웃음이 난다.

  그 후 38년 간을 교사로 있다가 2008년에 퇴직을 한다. 자연주의자인 그는 심각한 자연파괴와 기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지구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날로달로 변해가는 시골의 개발 바람, 징검다리가 사라지고 섬진강은 썩어가고 있다.  기업가들과 군의원들이 나서서 자연을 무자비하게 개발하고 착취하고 있는데 이를 ‘오만한 인간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인간 멸종 프로젝트’ 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가족처럼 함께 놀며 일하며 살았던 품앗이와 두레, 언제부터인가 사라져가는 이런 마을 공동체와 늘어가는 이기주의 현상, 죽어가는 농촌에 대하여 속상함을 감추지 못한다.  예전의 농민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변하여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 현실이 한탄스럽기만 하다.

  공동체 삶으로 생명평화, 민족평화에 나서는 도법 스님.  도법 스님은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분인데 불교계의 업적을 많이 쌓은 분이며 김용택 시인과 삶의 방향이 참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1994년 조계종 내부에서 폭력을 동반한 불미스러운 일대사건이 일어난다.  94년 98년 조계종단 사태를, 견디기 힘들었던 충격과 괴로움으로 회상한다.  도법은 이를 거칠게 비판하며 수습 책임자가 되는데 그 때문에 유치장 신세도 지게 되지만 종단의 개혁이 시급했으므로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방법은 비폭력 평화정신으로! 

 도법은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는 출발점으로 연기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모든 생명의 질서는 연대이고 그 연대 질서속에서 ‘나’만 사는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 라는 공동체의식.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 사람이나 짐승이나 미생물까지도 서로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서로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깨우침.  자연보호. 생태를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은 자살행위라는 것. 

  김용택 시인과 도법스님의 요점은 공동체 의식과 실천 그리고 자연사랑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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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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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다.  주인공 허삼관이라는 사람을 보면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속 김첨지도 생각나고 하근찬의 ‘수난이대’ 의 박만도도 겹쳐진다.  너나 나나 대부분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한 시대(1920~1950년대)의 가장이라는 것, 겉으로는 거칠고 무뚝뚝해도 속정만큼은 깊고 깊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구사하는 일상어가 질펀한 비속어가 대부분이지만 매우 해학적이라는 것. 그 해학 속에 맺혀지는 눈물 방울방울, 그들의 처참한 비극에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마치 우리의 가락, 판소리 사설을 읽고 있는 듯한 가슴 속 진한 울림? 맞다! 판소리 한마당을 듣고 있는 듯 리듬을 타는, 슬프지만 웃음나는 따뜻한 이야기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해야 했던 허삼관은 그렇게 해서 장가도 가고 사고 친 아들의 합의금도 내고 아들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기도 선물도 산다.  알고 보니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큰아들 일락이가 다른 남자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런데 그 복수하는 방법이 지극히 소박하고 인간적이다.  그 정도도 하지 않으면 지난 9년동안 자라 대가리(중국에서 최고의 치욕적인 욕)로 살면서 남의 자식을 공짜로 키워준 것이 억울해서 못산다. 

  허삼관에게는 속이 터져 죽을 일이지만 독자는 웃음이 나서 죽겠다.  그런 큰아들에게 친아버지가 죽게 생겼을 때 당부하고 설득하던 장면들 “일락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내가 늙어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런 저런 일에 아무리 악을 떨어도 허삼관은 결국 정 많은, 그런 사람이다. 

  그랬던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죽어갈 때 상하이 병원으로 먼저 보내놓고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름에 거쳐 서너 번의 피를 팔면서 병원으로 향한다. 이것은 죽음을 담보한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아들 일락이를, 친아들은 아니지만 그를 살려야 한다.  웃으면서도 가슴을 졸이는 사건들로 독자는 긴장을 놓지 못하는데, 이 이야기가 희극으로 끝나서 참 다행이다. 작가에게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엔딩에서 작가에게 고맙고 한시름 놓고 좋아하는 독자의 반응, 아무 작품에서나 느껴지는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참말 고맙다.  
 

 

  가장의 길은 왜 그리 고됨의 연속인지.  그래서 옛어른들이 아무리 어리숙해도 결혼한 사람은 어른대접 극진한 반면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일지라도 미혼이면 어른축에 끼워주지 않았나 보다?

  중국인 작가 위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인물 하나하나가 어찌나 개성을 담고 익살스러운지, 그의 또 다른 작품에 자꾸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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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뜨려는 배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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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볼 때는 '사서 고생'이다.  구식 배, 범선을 타고 바다를 여행한다는 것.  ‘안 뜨려는 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바다와 배에 대하여 낭만을 품었던 주인공, 모왓(모왓의 자전적인 소설)씨는 1900년대 이전의 구식 항해 용구들을 경매로 모조리 사들인다.  그리고 구식 배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의 섬 뉴펀들랜드로 떠난다.  배안의 시설과 색깔, 선구들은 엉망이지만 작고 귀여운 구식 배를 구입하고 수선하는데만 수 개월이 걸린다.




  배로 여행하는 설렘이 없었다면 수선하는 과정에서 진즉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얼추 항해하기 알맞게 재탄생



된 배의 이름은 ‘해피어드벤처호’  잭이라는 친구와 함께 시작된 항해는 배도 사람도 익숙하지 않으므로 삐그덕이다. (여행이란 것이 그렇다.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가는 것이다.) 해적보다 더 무서운 안개와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데, 처음 부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가 아니다.  고됨의 연속.  여행이라기 보다는 바다와 안개와 사투를 벌이는 광경이 훤하다.  그것도 여행의 일부라면 또 그렇겠지만.




  여행할 때는 동행자의 선택도 중요하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잭’이라는 사람, 왠지 구식배로 구식 여행을 하기에는 문명의 편리함과 깔끔함에 너무 익숙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여행을 정의하자면 여행은 ‘집 떠나 고생’ 이다.  안락함의 끝, 고생시작! 때로는 길에서 웅크린 잠을 자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생명에 위협을 감수하기도하고 뭐,그런 것!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모왓이라는 사람은 그 정도면 구식 여행에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중간에 들른 항구에서 사업문제로 떠나야 했던 잭과 교체되는 승무원, 마이크 라는 사람, 도서관 관리국장이라는 마이크는 잭의 소개로 항해에 합류하게 되는데 참 낙천적이다.  우유부단하지 않다면 여행에 동행하는 사람은 낙천적일수록 좋다.  마이크는 평생 세 번의 항해 경험이 있지만 누구보다 바다자체와 바다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관심있는 분야로의 여행이라면 고생도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

  

 여행할 때 길러지는 것, 필요한 것, 바로 임기응변 기술이다.  기술? 임기응변은 누구에게 배워서 써 먹는 기술은 아니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지혜에서 발휘되는 재치!  처음부터 지혜를 가지고 여행하기보다는 여행을 통한 예기치 못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경우가 많다. 배보다 3미터나 더 긴 상어를 만났을 때, 해피어드벤처호는 상어의 등 위를 통과하게 되는 데 그때 식수를 모두 잃고 만다.  다음 항구까지는 꽤 긴 시간이 남았고, 그 때 마이크는 럼주(술)로 커피를 끓여 갈증과 추위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술로 끓인 커피를 마셔 보셨는지? 어떤 맛일지, 오묘한 음료맛이 아닐까!  상어를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술로 만든 커피맛을 볼 수 있었을까!




 중간 중간 항구에 정박해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 사람들과의 식사와 대화, 해피어드벤처호 정검과 수선에 대하여 주고 받는 도움.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부분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 여행을 선망하고 삶의 목표로 정하기도 한다.  교통의 발달(특히 비행기)로 어디든 못 가는 나라가 없다.  국내에서만도 고속열차까지 등장하여 기회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편리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럴 때 고생도 즐거움의 일부라 여기며 사라져가는 옛날 방식으로 여행을 해 보는 것, 그것도 값진 경험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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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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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시집을 떠 올린다. 작가의 사진을 보며 음유시인의 분위기를 읽는다. 아니 그는 진정 음유시인이다.  1994년에서 2005년까지 70여 개 국 300여 도시를 떠돌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시를 쓰는 사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소한이야기, 평범하게 말하면 여행 기록문이다.  그런데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까운 독특함이 있다. 알고보니 작가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어쩐지 다르더라 했지!  FM음악프로그램에서 작가의 경력도 가진 사람. 글과 사진에 매료될수록 자꾸 작가에게 빠져든다.  여느 기행문처럼 들뜨거나 시끌벅적하지 않다.  애잔하면서 고요한  독백체로  친근하고 가슴 찡한 구어체로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 사람을 잘은 모르지만 한 번쯤 데이트를, 아니 연애를 해보면 어떨가 싶은 사람.........'끌림!' 이다.

 



 

마추픽추가 있는 페루, 작가가 그 곳에서 만났다는 옥수수 청년 이야기.   '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말이 통하지 않을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 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33 옥수수 청년) 따로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 데  작은 감동 하나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작가가 파리의 빈민가에서 살때, 작은 일에도 화를 자주 내던 식료품가게 할아버지가 하루는 신문지랑 잡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다가 2층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압사하고 만다.  그 책들 속에는 작가가 버린 한국 잡지도 보였고 작가는 안타까움에 목이 멘다.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선 뭔가를 자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과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목이 메게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거야.  아랍 가게 할아버지로부터. #29 산더미

 

글 속에 인용한 티베트 속담도 나는 참 좋다.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 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 #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내일로 또는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 어떤 일을 얼른 실천하도록 재촉해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타국에서 여행 중에 생일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엄마표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초라하지도 않다.  오히려 안분지족의 생일상으로 뿌듯하다. 행복은, 만족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밥이 먹고 싶어서 쌀파는 곳을 겨우 찾아낸 다음 쌀을 사서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서 들고는 가을 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공원에 가서 먹었는데 나는 그 정도 행복이면 돼요.  달걀 두 개의 값과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  (#56 생일)

 

짧은 몇 마디에 섬짓할 정도로 광대한 뜻을 품은 글 귀도 좋다.  시간은 누구의 사정을 봐주지도,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43 먼 훗날)  이래도 다음으로 미룰 것인가!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한 걸  그만, 두고 온 거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건데  과연 나는 찾으러 갈 성격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됐느냐 하면 그게 한낱 물건이면 비행기 값도 계산해야 되고,  또 시간적인 것도  계산에 넣어야 되고......, 결국은 물건일 경우, 가지 않을 것 같단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인 경우, 사람 문제인 경우엔 조금 다를 거란 생각.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를 거란 생각.  소중한 누군가를 그 곳에 두고 왔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 곳에 남아 있다면

언제건 다시 그 곳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그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 지 그건 장담 못하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 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마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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