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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다. 주인공 허삼관이라는 사람을 보면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속 김첨지도 생각나고 하근찬의 ‘수난이대’ 의 박만도도 겹쳐진다. 너나 나나 대부분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한 시대(1920~1950년대)의 가장이라는 것, 겉으로는 거칠고 무뚝뚝해도 속정만큼은 깊고 깊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구사하는 일상어가 질펀한 비속어가 대부분이지만 매우 해학적이라는 것. 그 해학 속에 맺혀지는 눈물 방울방울, 그들의 처참한 비극에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마치 우리의 가락, 판소리 사설을 읽고 있는 듯한 가슴 속 진한 울림? 맞다! 판소리 한마당을 듣고 있는 듯 리듬을 타는, 슬프지만 웃음나는 따뜻한 이야기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해야 했던 허삼관은 그렇게 해서 장가도 가고 사고 친 아들의 합의금도 내고 아들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기도 선물도 산다. 알고 보니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큰아들 일락이가 다른 남자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런데 그 복수하는 방법이 지극히 소박하고 인간적이다. 그 정도도 하지 않으면 지난 9년동안 자라 대가리(중국에서 최고의 치욕적인 욕)로 살면서 남의 자식을 공짜로 키워준 것이 억울해서 못산다.
허삼관에게는 속이 터져 죽을 일이지만 독자는 웃음이 나서 죽겠다. 그런 큰아들에게 친아버지가 죽게 생겼을 때 당부하고 설득하던 장면들 “일락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내가 늙어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런 저런 일에 아무리 악을 떨어도 허삼관은 결국 정 많은, 그런 사람이다.
그랬던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죽어갈 때 상하이 병원으로 먼저 보내놓고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름에 거쳐 서너 번의 피를 팔면서 병원으로 향한다. 이것은 죽음을 담보한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아들 일락이를, 친아들은 아니지만 그를 살려야 한다. 웃으면서도 가슴을 졸이는 사건들로 독자는 긴장을 놓지 못하는데, 이 이야기가 희극으로 끝나서 참 다행이다. 작가에게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엔딩에서 작가에게 고맙고 한시름 놓고 좋아하는 독자의 반응, 아무 작품에서나 느껴지는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참말 고맙다.
가장의 길은 왜 그리 고됨의 연속인지. 그래서 옛어른들이 아무리 어리숙해도 결혼한 사람은 어른대접 극진한 반면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일지라도 미혼이면 어른축에 끼워주지 않았나 보다?
중국인 작가 위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인물 하나하나가 어찌나 개성을 담고 익살스러운지, 그의 또 다른 작품에 자꾸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