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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 권지예 소설
권지예 지음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고양이 모양의 퍼즐이 그려진 표지가 산뜻하다.
책을 들쳐보니 270페이지나 되어, 꽤 오랫 동안 손에서 잡고 있어야겠구나 했는데 웬걸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권지예 씨의 <폭소>나 <꽃게무덤>을 읽어보긴 했는데, <퍼즐>은 좀 독하다.
<퍼즐>은 총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독하다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충격적인 결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설은 강렬하고,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다.
<red>에서 침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b는 e와의 사랑의 결정체였던 침대를 그녀와 헤어지고도 사용한다.
헤어지기 전 그들은 서로에게 받은 물품을 주고받았지만, 침대만은 b가 소유하게 된다.
b의 부인인 d가 우연히 그 침대의 사연을 알아버리고, 그 침대를 버릴 것을 요구하지만 b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d는 어떤 세제나 소독약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b의 죽은 몸에서 썩어 문드러져 흐른 시즙이 묻은 침대를 e에게 보낸다.
마지막의 '침대는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게 d의 생각이었다'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고 나서, d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진다.
<퍼즐>에서 여주인공의 일상은 퍽퍽하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전처의 딸, 오로지 그림에만 관심 있는 남편, 지난 세월 딸을 임신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버려야 했던 기억들.
"간혹 나는 내가 흔들어 놓은 맥주 캔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겉은 멀쩡하지만,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맥주 캔처럼 따기만 하면 내 안의 증오와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아아, 주술적인 힘이라도 빌려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다면, 그런 면에서 나는 안씨가 부러웠다." -p54
그녀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세 번의 자살 시도가 보여주듯 그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정착하지 못한채,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남편의 "마치 아내가 한때 그토록이나 몰두했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처럼." 말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바람의 말>의 조장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네비야, 청산가자>에서 만수가 4박 5일간 조선족 여인과 결혼 성사하는 과정을 보며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여주인공 오영실>은 미스터리하다. 소설가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작가의 예전 작품의 주인공인 오영실이 자기라고 밝히는 그녀와 소설가는 만날 약속을 한다.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자기와 닮은 여자가 교통 사고를 당하고, 그녀가 오영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꽃 진 자리>에서 향이 엄마는 남자에게 두 번 버림을 당한 후 결국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고,<딥 블루 블랙>의 여주인공도 스스로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각 단편들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잃었고, 상처를 받았으나 치유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여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 권지예씨의 작품과 달리 충격적인 결말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