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반 동안

한 점에서 머물렀다

마치 다른 세계에 머물던

각각의 선분이

한 점에서 만나듯이

 

 

오늘도 나는

그때 그것을

참아야 했노라고

그때 그것이

기회였노라고

완료된 시제에

매달리기도 했다

 

 

돌아온 길이든

벗어난 길이든

참 오느라 애썼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어느 길에나

회의는 머물고

피곤은 떠돌므로

 

 

우리는 모두

전반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비범하다는

말을 통과하는 오후

그녀와 주고받은 것은

고해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하다며

자꾸 정의를 내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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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돌아왔다

얼마 만에 나선 거리에

소복하게 모양낸 얌전한 소국부터

제법 살이 오른 도톰한 중국까지

국화가 돌아왔다

일제히 가게 밖으로 나와

여름내 지친 영혼을 달래고 있다

 

 

이제는 돌아온 변을 들어야 할 때

분주하게 오가는 발길들에

은근히 말 걸어오는

국화가 돌아왔다

늙지도 않고 처음 그 때처럼

새로운 설렘을 몰고

국화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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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폐쇄공포증으로 죽을까

좁은 곳에 갇히면 답답해 죽을까

어느 날 갑자기 집이 답답하다니

집이 작아진 것도, 갇힌 것도 아닌데

왜 돌연 집은 감옥이 된 것일까

 

답답하게 보는 그 눈의 변화가 문제다

답답한 현실이 아니라 답답한 눈이 문제다

부풀린 풍선처럼 몸집만 큰 욕구가

현실을 집어삼킨 채 숨을 토하고 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욕구를 처리하고 있다

 

왜 당신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나요

왜 당신은 양떼를 모는 양치기처럼

자꾸 당신을 몰고 가려고 하나요

막다른 길에 도달한 양들에게

감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느새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고

덩달아 주관과 객관도 뒤섞여  

삶은 혹독하게만 다가올 거예요

그러니 당신의 삶에 모질지 말아요

집을 짓기도 하고 감옥을 짓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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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라는데

가을을 머금은 여름비가

존재의 소리를 내는 밤

맞바람을 허용하지 않듯

뒷베란다 문이 닫히고

세찬 바람 지나간 자리엔

영화의 예고편처럼

가을이 남아있다

 

 

비는 내릴 듯 말 듯

나는 채울 듯 말 듯

온종일 질척대는 것 같더니

제대로 내리는 저 여름비

제대로 안 된 누군가는

반전도 없이 구겨져있다

 

 

너는 아직도 구름이 되어

먼 산을 넘어오고 있을까

고만고만한 구름이 되어

어느 산 위에 살짝 내렸을까

아직 구름도 못 된 채

그렇게 떠돌고만 있을까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여간 낯선 일이 아닌데

지하수처럼 흐르지도 못한

너의 낮은 언제나 주저함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시 지친 저녁이 돌아온다

 

 

네가 견딘 것은

내용 없는 것들이라고

기약 없는 구름이었다고

어느새 희미해진 빗속에서

쓸쓸한 소리가 들려온다

존재의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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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쓸한 관계

 

 

 

애쓰지 않기 위해

카놀라유 두병과 참치캔 세개 든

동원선물세트를 들고 가는데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들의 만남은

명절과 같아서

때가 되면 모이고

때가 되면 흩어지는 것

 

 

만남을 예정하지 않아도

헤어짐을 아쉬워하지 않아도

우리는 만난 듯하다가

헤어지기를 몇 번이던가

 

 

돌아와도 끝나지 않는

후들림과 들썩임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대접아닌 대접을 받는다

 

 

그러니

이런들 저런들 얽힌다면

먼지 같은 저 세월에

등 돌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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