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억 분의 일은

지구에서의 나의 몫

나로 살아가는 일이

오천만 분의 일

십삼만 분의 일이어도

쉽사리 유의미해지지 않는

영 점 영영… 일의 희박함이여.

 

그래도 열정이었을 것들아

나로 시작해

나로 진행되는 동안

별 볼일 없음을 버티다가

유일함을 남길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로 살아가는 일처럼.

 

어둠이 내리면

지친 의미는 급히 피곤해 하고

두 다리를 눕히려 드는데

오늘도 거기까지구나

모자란 생각이 그 자리다

나로 살아가는 일이

매양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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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는 사람에게서

부스러기 같은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다가

도저히 맞지 않는 모양을

만났을 즈음에

빵조각 부스러기로

집으로 가는 표지를 남기는

헨델과 그레텔 생각이 나는 것은

부스러기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에서도

두 자아는 연일 빈번히 갈등했다

이상과 현실이 태생적으로 다르듯이

두 자아도 태생이 다른 것을

오히려 두 자아의 적절한 거리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백 번 양보해도 상반된 부스러기들이

벌이는 해괴망측함이

퍼즐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자아의 거리는 자연스럽다

같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순간,

가장 위험스럽다

다만 예측 가능한 범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네가 꿈꾸는 자아에게

통일성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 자아에게 예의를 요구할까

이쪽과 저쪽에 앉아 있는 부스러기들을

보다 긍정적인 거리에 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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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이어질 때

여느 날들을 돌아보았을 때

부족한 것은 휴일이 아니었다

반나절을 통화중이라고 해서

긴 하루가 적적한 것도 아니다

거리의 한계를 드리운 채

이해(利害)의 줄다리기를 하며

허공에 말하는 불구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휴일이 이어질 때

우리의 사연도

휴일처럼 길어지지만

휴식처럼 머물지 않는다

기록되지 못하고 묻혀갈

구전되는 이야기들은

온종일 첨삭되고 있다

긴 것들은 불순하다

 

불러도 불러도 후렴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래처럼

반복하는 가운데

흥분은 곳곳에 잠복해 있다

밤늦게 들여다본 어깨 뒤에

작지 않은 진갈색 흉터 자국

언제부터 내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앎은 모를 때, 가장 확정적일 것이다

 

밤도 깊었으니

이제 나그네는 집으로 돌아오리라

떠돌던 것들에게 뒷모습을 보이고

미련 없이 돌아서리라

한낮의 사연들은

먹은 것을 되새김질 하는 소처럼

다시 한 번 불려올지라도

이렇게 휴일이 이어지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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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따라 집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알았어요. 세상은 푸른 것처럼 보였지만 하늘은 구름과 조화롭지 못했어요. 대낮의 영화관은 을씨년스러웠어요. 인적을 잊고 시간을 잊은 곳, 잊을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그 날 따라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대낮의 해를 등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란 두려울 것도 같았어요. 그러나 먼지를 털듯 어둠 속에서 슬픔을 털었어요.

  

  소화되지 못한 것들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질서를 해치고 있었어요. 안 되면 배설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소화의 증거는 잘 나타나지 않았어요. 몸 속으로 들어오기는 쉬워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나가지 못하는 것들이 속에서 아우성을 쳤어요. 나를 지켜야 했어요. 내려가라고 삼키며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런 날은 한 다발의 스토크를 사야만 돌아올 수 있었어요. 스토커가 아니라 스토크라며 세심한 발음을 당부하던 꽃집 여자와 시큰둥한 친절 섞인 몇 마디를 나눴어요. 한 대에 이천 원이기에는 부들부들한 작은 꽃잎이 이루는 분홍빛 송이들이 많았어요. 벚꽃이 피고 진 자리에 향기는 남지 않았어요. 건성건성 싸준 듯한 네 대의 스토크 향기를 무심한 듯 들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한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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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꽃으로 왔다 꽃으로 간다

니 꽃 내 꽃 없이 곁에 머물다

화려한 시절 짧다 불평 없이 간다

 

4월에 꽃이 진 자리, 흔적도 없이

이파리들로 채워지면 꽃 따위야

잊고 말지만 아쉬움 없이 간다

 

40도 중반 넘으니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이 가는 길을 보게 된다

열매 말고 꽃은 꽃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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