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라는데
가을을 머금은 여름비가
존재의 소리를 내는 밤
맞바람을 허용하지 않듯
뒷베란다 문이 닫히고
세찬 바람 지나간 자리엔
영화의 예고편처럼
가을이 남아있다
비는 내릴 듯 말 듯
나는 채울 듯 말 듯
온종일 질척대는 것 같더니
제대로 내리는 저 여름비
제대로 안 된 누군가는
반전도 없이 구겨져있다
너는 아직도 구름이 되어
먼 산을 넘어오고 있을까
고만고만한 구름이 되어
어느 산 위에 살짝 내렸을까
아직 구름도 못 된 채
그렇게 떠돌고만 있을까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여간 낯선 일이 아닌데
지하수처럼 흐르지도 못한
너의 낮은 언제나 주저함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시 지친 저녁이 돌아온다
네가 견딘 것은
내용 없는 것들이라고
기약 없는 구름이었다고
어느새 희미해진 빗속에서
쓸쓸한 소리가 들려온다
존재의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