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를 다시 읽었다. 블랙으로 블러처리된 “1984”는 빛에 따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독서를 또다른 출판사로 접할수 있다는건 다른 결의 설레임을 준다. 이미 좋은 걸 아는 책의 경우 더 그렇다. 고전을 다시 출판하는데 있어서의 편집자의 고뇌를 내가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풍날의 ‘보물찾기’ 같은 기대랄까. 내가 읽었던 다른 출판사의 버전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 펭귄의 귤색 1984는 술술 읽히는 편안함이 있었다. 내용을 알고 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1984를 처음 읽는 누군가라면 펭귄출판사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몇 년 전 읽었을 때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재독의 즐거움을 느낀 기회였다. AI와 AGI의 발전이 상업화되면서 조지오웰이 고발하던 사회상은 변이를 거듭하며 개인을 가두고 있는게 아닐까. 빅브라더, 골드스타인, 오브라이언의 변형을 뛰어넘는 다른 색과 질감의 빅브라더를 생각게 했다. 윈스턴의 눈물의 의미, 각자의 101호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속도도 머무는 시간의 무게도 달랐다. 밖에서 안으로, 세계에서 개인으로 수렴되는 책읽기의 향유는 읽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읽지 않은 이들에게 1984의 줄거리나 주제의식은 툭하고 나올만큼 익숙할 수 있다. 그 주제의식이 냉전시대에 머물기만 했던 카테고리에서 이 시간과 미래로 가져와도 좋을 것 같다. AI발전과 윤리적 딜레마에서 고민하며 읽는 비문학과도 함께 읽을 만한 병행도서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 책은 시작과 함께 독자의 머릿속에 거대한 파놉티콘을 건축하면서 시작한다. 독자는 그 파놉티콘의 수감자로서 서 있다. 이렇게 참여자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책을 읽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저자의 질문을 함께 따라가고 그 답을 같이 만든다. 저자는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통해 구현한 감시의 메커니즘을 빅데이터-인공지능에 녹아든 감시문화와 프라이버시 침해, 역감시의 가능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된 효율중심의 설계가 20세기 이후 정보수집과 간접감시로 진화했는지 따라 가다보면 한 개인의 삶이 산업의 발전양상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조망하게 된다. 읽다보면 아날로그로 살아야하나란 생각도 없지 않아 든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서 개인정보유출이 있었다. 사고일 때도 있고 팔릴 때도 있었다. 반복되다보니 처음엔 신선한 정보였을 우리의 정보들이 지금쯤은 ‘공공재’가 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유출에 대한 책임보다는 유출이후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로 그 기업마인드를 판단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감시를 받아들였는가, 쓸데없다고 생각한 자질구레한 자투리 정보들이 어떻게 마케팅으로 수집되었는가. 데이터저항에 힘쓰고 그 권력에 STOP을 외친 누군가 덕분에 내 데이터들이 보호되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생물학적으로 잘 살고 잘 죽어가는데 포인트를 맞추는 요즘, 디지털프라이버시도 내가 잘 쓰고 잘 거두어야 할 부분이라는 또 다른 숙제와 관심포인트를 남긴다. 비문학 특히 과학이야기는 원문이어야 나와 같은 문외한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재미있게 잘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117년 노포서점의 유튜브&브랜딩 생존기”라는 부제는 나중에야 발견했다. 주제목은 사랑받기 위한 개인의 노력, “사장님”의 노력인가란 인상을 주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읽다가 다시 표지를 보고나서야 상대적으로 작은 부제를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아날로그를 간직한 117년의 노포서점이 어떤 식으로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서는지를 보여준다. 옛정서를 가진 일본의 노포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랑과 관심을 위한 노력의 형태가 어떤 식일지 궁금했으나 내가 예상한대로의 노력은 아니었다. 치밀하면서도 냉정한 진단과 개선의 솔루션이 들어가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사랑받기는 곤란한 상태인가 싶기도 했다. 사랑받기 위한 기술자문을 충실히 수행하는 하야시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나라도 한때 열광했던 ‘벤치마킹’에 대한 적극적 도입과 적절한 대입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벤치마킹보다는 좀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더 찾으려는데 집중해 있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기술기획자문으로서의 하야시의 리더쉽는 큰 성공을 거둔다. 독립서점 정도의 규모의 노포가 사랑받는 것을 생각한 나에게 하야시가 컨설팅한 유린도, 유세카의 성공은 갭차이가 컸지만 어떤 목표를 두고 냉정하게 이끄는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고 생각게 한 부분이 있었다. 채널 마스코트 ‘붓코로’의 컬러풀한 그림이 더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프랑스문학의 매력은 인간의 껍데기를 두드려 본성에 틈을 낸다는데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놓지 않으려는 한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글라디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아름다움을 놓지 않으려한 여자. 글라디스에게는 모든 것과 바꿔서라도 가장 아름다운 때에 멈춰있겠다는 의지였다. 세계대전 전후의 사회상은 인간사에 빠질 수 없는 불합리하고도 무분별한 개입을 한다. 이렌 네미롭스키의 작품들이 레모에서 연이어 출판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미롭스키의 개인사를 제치고서라도 그녀가 그린 글라디스는 네미롭스키가 주는 형벌과 애증을 모두 받은 인물이었다. 글라디스의 욕망을 손가락질하다가도 독자 역시 자신이 가진 욕망의 한 가닥을 직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글라디스를 욕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를 욕할 수 있을 사람은 마리테레즈와 베르나르뿐 아닐까. 단숨에 읽게 하는 매력의 작가를 발견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평에 줄거리 쓰기는 예비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므로 항상 자체 편집을 하는 편인데 참으로 입이 근질거린다.
비로소 내 안에 들어온 소로 : 《월든》의 은둔자에서 《시민불복종》의 투사로《월든》을 읽었을 때의 내게 소로는 문장력에 대한 인정유무를 떠나서 부유한 지인을 통해 자연으로 도피한 인물 정도로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시민불복종》은 '전혀 다른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사회참여형 인간으로서의 소로를 대면하게 해 주었다. 만약 누군가 소로의 책을 딱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월든》이 아닌 《시민불복종》을 권하고 싶다. 특히 문예출판사의 시민불복종을 권한다. 특히 이번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의 구성이 탁월했다. 사회참여자로서의 소로가 왜 불복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치열한 저항 끝에 실상 그가 갈망했던 진짜 생(生)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서정적이고 짧은 에세이들이 곁들여져 있다. 덕분에 소로라는 한 인간의 안과 밖, 그의 내면적 고뇌와 외면적 실천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불통의 철학자 같았던 그가 비로소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내게 사회참여형 작가는 조지 오웰이었는데 소로역시 그와 같은 결의 작가였다. 소로가 주장한 시민으로서의 불복종과 저항, 그리고 위정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의로운 자세는 19세기의 외침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무분별한 주장과 말뿐인 공약이 펼쳐지는 지금, 그의 시선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부조리한 국가의 명령에 영혼 없이 순응하는 '기계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먼저 지키라던 소로. 그의 서슬 퍼런 외침은 선거라는 중요한 선택을 앞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시민이어야 하며 어떤 지도자를 요구해야 하는지 매서운 질문을 던진다. 드디어 소로의 진면목을 만났다.#시민불복종#헨리데이비드소로#문예출판사#일파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