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내 안에 들어온 소로 : 《월든》의 은둔자에서 《시민불복종》의 투사로《월든》을 읽었을 때의 내게 소로는 문장력에 대한 인정유무를 떠나서 부유한 지인을 통해 자연으로 도피한 인물 정도로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시민불복종》은 '전혀 다른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사회참여형 인간으로서의 소로를 대면하게 해 주었다. 만약 누군가 소로의 책을 딱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월든》이 아닌 《시민불복종》을 권하고 싶다. 특히 문예출판사의 시민불복종을 권한다. 특히 이번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의 구성이 탁월했다. 사회참여자로서의 소로가 왜 불복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치열한 저항 끝에 실상 그가 갈망했던 진짜 생(生)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서정적이고 짧은 에세이들이 곁들여져 있다. 덕분에 소로라는 한 인간의 안과 밖, 그의 내면적 고뇌와 외면적 실천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불통의 철학자 같았던 그가 비로소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내게 사회참여형 작가는 조지 오웰이었는데 소로역시 그와 같은 결의 작가였다. 소로가 주장한 시민으로서의 불복종과 저항, 그리고 위정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의로운 자세는 19세기의 외침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무분별한 주장과 말뿐인 공약이 펼쳐지는 지금, 그의 시선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부조리한 국가의 명령에 영혼 없이 순응하는 '기계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먼저 지키라던 소로. 그의 서슬 퍼런 외침은 선거라는 중요한 선택을 앞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시민이어야 하며 어떤 지도자를 요구해야 하는지 매서운 질문을 던진다. 드디어 소로의 진면목을 만났다.#시민불복종#헨리데이비드소로#문예출판사#일파만파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샘터, 내가 처음 동화책과 백과사전을 벗어나 읽게 된 것이 바로 샘터사의 책일 것이다. 누군가의 서정적인 글들이 어린 나에게 주던 은은한 파장을 기억한다. 김현호라는 개인의 서정성을 상상했던 것은 이런 내적인 이력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퇴자의 삶과 구성은 어떤 것인가 나역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은퇴가 멀지 않았으므로 미리 그 길을 간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작가는 오래도록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해 왔다. 일부러 책날개의 이력을 보지 않고 책을 읽어갔는데 작가의 글은 확실히 그의 삶인 것이 확실하다. 읽는 내내 그의 삶의 방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주도면밀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택처분을 둘러싼 이견에 대한 그의 자세 때문이었다. 은퇴부부의 삶이 서로 같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거란 현실을 그는 부인의 눈높이에서 면밀하게 맞추는 것이다. 때로는 낯설고 친숙한 사계절의 꽃과 함께 담긴 에피소드가 작가의 생활과 작은 웃음이 있다. 과거를 소환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군주론』을 다시 읽으며, 군주가 될 생각없는 사람은 두번 읽어야할 책사회지도층에게 회자되는 『군주론』은 애초 군주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 나에겐 그다지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군주’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느 샌가 재독이다. 같은 책이라도 다른 번역, 다른 출판사 서로를 비교하는 기묘하고도 작은 즐거움을 즐기는 편이기에 이 두 번째 독서 또한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번 재독을 통해 나는 대상만이 변화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이 책은 메디치시절의 이탈리아를 둘러싼 역사적 흐름을 펼쳐놓고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군주로서의 강령’을 수업받게 한다.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 그는 피렌체 공화정의 몰락과 함께 쫓겨나 시골에 칩거하던 처지였다. 그에게 『군주론』은 새로 권력을 잡은 메디치 가문(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어 어떻게든 중앙 정계로 복귀하고 싶어 했던, 이른바 '인생 역전을 노린 포트폴리오'이자 열렬한 구애의 편지였다. 피렌체 공직으로 복귀하고 싶어서 메디치 가문에게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정계 복귀를 꿈꾸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어필, 마키아벨리의 절박함과 욕망이 엿보여 내내 웃음이 깔리기도 했고 메디치를 향한 열렬한 구애에도 메디치의 군주에게 전달되었는지 읽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했다.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욕망이 단순히 '권력에 눈먼 아첨'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냉철한 분석과 현실감각에 애국심이 더해져 있는 가감없는 지침서로서 적확했기에 대중에게 유통하기에 위험한 책으로 분류된 것이 아닐까 싶다. 금서로 분류된 이유는 반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권력자의 민낯을 고발하는 책이어서가 아닐까. 권력자가 매섭든 달콤하든 그 매커니즘을 알게 된다면, 군주의 신비주의 상실과 권위추락을 막을 순 없을 듯하다. 권력자들에게 『군주론』의 확산은 영업기밀 누설과 같은 공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바꿔 생각해보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아첨하는 척하면서, 역설적으로 인민들에게 권력의 가면을 벗겨내는 방법을 알려준 셈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야말로 지금 이 책은 더욱 크게 회자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위 ‘군주’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권력아래에서라도 일반인의 필독서가 아닌가해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 자체가 현재와 미래의 ‘군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경종이 되지 않을까.재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기회였다. #군주론#나콜로마키아벨리#까치#일파만파
아멜리 노통브는 불친절하다.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발칙함과 거침없는 전개, 맥락 없는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럭비공같은 호선을 그리는 이 매혹적인 작가의 세계에 빠져, 나는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었었다.신작 《자매의 책》 역시 노통브다운 작품이었다. 외형적인 부피감과 달리 200쪽을 넘지 않고 가독성 또한 여전했다. 예기치 못한 전개 속에서 노통브의 단어는 짧은 서사 안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하고 독자의 서정성을 툭툭 건드리고 지나간다. 작가는 이 얇은 책 속에 자매와 모녀가 겪는 날카롭고도 미묘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압축해 놓았다.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개인의 궤적과 맞닿는 순간이다. 나 역시 한 사람의 자매이자 언니로서, 소설 속 '노라'의 모습을 보며 자기반성을 마주했다. 맏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에서 슬며시 뒷걸음질 쳐온 스물몇 자락 이후의 방관자적 나라는 언니를 호출했다.언제나 그렇듯 노통브는 친절한 설명 대신 강렬한 타격감을 선택했다. 배경처럼 존재하던 노라가 극의 후반부 던진 정서적 충격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뒤흔든다. 과연 노통브다운, 여전하고도 경이로운 뒷통수 후리기다.#자매의책#아멜리노통브#열린책들#프랑스문학#일파만파
올해 읽은 책 중 옌롄커의 <딩씨마을의 꿈> 참 잘 읽었다. 중국이나 일본은 가깝지만 문학적으로도 먼 곳이었는데 그 편견을 깬 책이었다.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같은 책의 작가인 옌롄커는 중국의 문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일이 생긴다면 제 1번으로 선택될 작가가 될 것이다. 두번째로 접한 이 책의 결은 옌롄커가 기복없는 작가임을 독자층이 두터운 이유도 알것 같았다.소설이기보다는 동화와 같은 작품임에도 나날이 늘어가는 햇볕의 무게만큼 읽을수록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책이다.특히 작가서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일렁이는 옥수수밭과 해를 통해 느낀 개인적 체험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애지중지 키운 옥수수한그루처럼 작가안에 발아된 씨가 작품으로 키워졌는지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러한 안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이 파종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게 한다. 눈이 먼 개에게 말을 거는 노인이 우화같으면서도 일훈 둘의 나이와 가뭄을 이겨내려는 그의 생을 위한 의지와 일갈에서 햇빛의 무게를 달거나옥수수 한그루를 살리려 애쓰는 그의 손길에서 나는 나 이후의 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생각했다. 나의 옥수수, 나의 장님, 그리고 동전의 선택, 내가 남기고자 하는것이 어떤 의미일지 그게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때문에 나는 뭔가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던가 싶다. 자연의 일부로 잘 남는 것은 어떤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