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스마에는 건축과 미술, 문화가 각각 개별적인 원리가 아니라 도시와 풍경의 필수적인 부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희망이 담겨 있다. - P266

그러는 동안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가시성과 비가시성The Visible and the Invisible』을 읽었다. 그중 한 챕터의 제목이 〈키아슴The Chiasm〉이었는데, 공간 속의 교차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는 눈알 뒤에서 신경들이 교차하는 것과같다. 결국 <키아슴>이 그 건물의 콘셉트가 되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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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골리어들이 하는 일, 그들의 생의 목표는(로저 투미가 사는 세상에서는 무엇이든지 직업이 있고 무엇이든지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했다) 게으르고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장례식에서 연주되는 북처럼 천천히 묵직하게 고동쳤다. 침을 삼키자 목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조만간 비행기는 자기 그림자와 입을 맞추면서 구름 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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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이든 완구든 그 자체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품을부품으로 하는 ‘큰 이야기‘ 또는 질서가 상품의 배후에 존재하기때문에 개별 상품이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되고, 비로소 소비되게된다. - P94

그리고 이러한 소비 활동을 반복함에 따라 우리들은 ‘큰 이야기‘의 전체상에 다가가게 된다, 라고 소비자가 믿게 만들면 같은 종류의 무수한 상품(‘빅쿠리맨‘의 씰이라면 772매)의 판매가 가능해진다. - P94

소비되고 있는 것은 각각의 ‘드라마‘나 ‘물건‘이 아니고, 그 배후에숨겨져 있음이 분명한 시스템 그 자체다. 그러나 시스템(=큰 이야기) 그 자체를 팔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한 단면인 1화분의 드라마나 하나의 단편으로서의 ‘물건‘을 눈가림으로 소비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나는 ‘이야기 소비‘라고 명명하고 싶다. - P95

오쓰카의 논의를 따른다면, 오타쿠들은 〈건담〉의 이야기를 보지 않았다. 적어도 아무로나 샤아의 이야기가 보고 싶어서 <건담〉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고, 건담의 무대인 우주세기라는 세계관에 액세스하기(오카다의 말을 빌린다면 ‘암호를 풀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 P95

필자 나름대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에반게리온〉 이전의 작품=이야기 소비는, 한 작품의 세계관을 기초로 그것과 정합성을유지하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려 했던 것에 반해, - P100

데이터베이스 소비는모든 작품이 순식간에 요소요소로 해체되어 다른 작품으로 출력(예를 들자면 〈에반게리온>의 조종석과 〈톱을 노려라!〉의 우주선으로부터탄생한 〈별의 목소리〉)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오리지널과 2차 창작이 구별되지 않는다고 아즈마는 말한다. - P100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 후반부터 제로연대에 만들어진, 거대로봇이나 전투 미소녀, 탐정 등 오타쿠문화와 친화성이 높은 요소나 장르 코드를 작품 내에 도입한,
젊은이 (특히 남성)의 자의식을 묘사한 작품군. - P115

그 특징 중 하나로 작중 등장인물의 독백에 ‘세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것에서 따와 이와 같이 명명되었다. 명명자는 웹사이트 ‘푸루니에 북마크‘의 관리인, 푸루니에. - P115

굳이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세카이계‘란 ‘학원 러브코미디’와 ‘거대로봇 SF‘의 안이한(그렇기에 강력한 결합이다. 즉 ‘애니메이션 =게임‘의 양대 인기장르를 조합해 마음껏 순도를 올린 셈이 된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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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사부아에는 소실점들이 있어서 일반적인 원근법을 보여 준다. 반면 알토가 지은 집에는 소실점이 없다. 빌라 마이레아는 바깥 풍경과 합쳐지고 맞물리면서 공간을 확장시킨다. 빌라 마이레아 안에 있으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시야의 중첩이 느껴진다. - P167

빌라 사부아의 엄격한 기하학적 공간을 걷고 있노라면 순수주의 선언의 고정된 확실성이 느껴지지만, 빌라 마이레아 내부를 거닐면 불확실성의 현상학적 수용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알토의 작품 주제였던 것처럼. - P167

정교하게 면을 이루는 형태에 반사되거나 굴절된 빛의 현상적 특성들은 면을 가진 형태 제작의 형식적 양상들을 초월한다. 그 형태들은 지는 해의 환한 주황빛에 물들고, 그 빛은 그것들의 인공적인 표면에서 날마다 변한다. - P168

자연광과 그림자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기운을 북돋는 심리학적 힘을 갖고 있다. 태양 각도의 계절적 변화가 일출로부터 일몰까지의 변화에 의해 증폭되면 빛과 융합된 다공성은 아름다운 무용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P168

오늘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과거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다공성을 막과 펴면, 고형물에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현상적 특성을 지닌 21세기 건축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 P168

하지만 기술의 힘이 아무리 전능하다 해도 여전히 인간의 동기가 필요하며, 정신과 물질의 연결이 요구된다. - P168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작품은 허망한 과시이거나 유행을 조작하는 어설프고 경박한 행위로 전락한다. - P169

디지털 방식으로 구동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객관적 측면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들이 주관적인 측면이라면, 물질과 정신을 이어 주는 것은 객관과 주관의 융합이다. - P169

일종의 직관이나 <주관적 이상(理想)〉은 객관성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최후의 물리적 형태에서는 기술의 힘이 드러나지 않는다. 정신의 감각적 경험 안에서 성찰이 그 존재를 완성한다. - P169

우리는 평면, 단면, 입면이 같은 물체를 최초 모델로 삼았다. 바로 멩거 스펀지라고 불리는 과학적 물체인데, 이 물체는 다공성 안에 다공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형태를 모턴펠드먼의 작품인 반음계의 패턴들Patterns in a ChromaticField」의 음악적 콘셉트와 조합함으로써 이 건물의 컬러필드를 규정하는 우연적 효과를 이끌어 냈다. - P184

시먼스 홀의 스펀지 콘셉트는 일련의 시설적 기능과 생물공학적 기능을 통해 다공성 건물 형태학을 변형시킨다. 이 건물 전체에는 커다랗게 다섯 곳이 뚫려 있다. 이 부정형 터널들은 기숙사의 주요 출입구, 전망 복도, 주요 옥외 활동 테라스에 거의 상응하며 체육관 같은 각종 시설들과 연결된다. - P186

우리는 다공성 개념을 건물 전반에 체계적으로 적용했다. 처음에는 도시 레벨로, 이어서 벽의 스케일로, 그리고 각방에 9개의 창을 내는 것으로 말이다. 모든 학생은 자기 방의 창문 9개를 모두 열 수 있다. - P204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은 언제나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안에 들어가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심장해야 한다.」 - P225

이 건물은 천연 소재와 노출 자재로 마감하여 경제적이다. 레이어가 하나뿐이다. 바닥은 콘크리트이고, 천장도 노출콘크리트이다. 내부에 구멍이 뚫린 콘크리트 바닥 판을 따라 모든 HVAC 시스템이 깔려 있어서, 모든 냉난방이 바닥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공은 복잡해도, 덕분에 덕트가 노출되지 않는다. - P226

기업들은 대부분 도시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으며, 그들중 일부에게는 기업이라는 호칭도 아깝다. 그냥 장사치일뿐이다. 그들은 최대 30층짜리 건물을 지으면서 개별 아파트의 수를 최대로 채워 넣는다. 대리석 바닥과 구리 문손잡이로 이루어진, 커다랗기만 한 아파트. 건물 주위에는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경비가 둘씩 있으며, 주민들은 차를 이용해 출입한다. - P241

나는 우리가 도시적 상호작용의 비전이 있는 프로젝트를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프로젝트 말이다(가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여기는 매우 개방적입니다.」 - P241

특정 도시들의 빛과 공간의 현상적 성질들은 도시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이상하게도 도시 계획자들은 도시의 공간과 형태(때로는 참담한), 도시 경험에 막대한영향을 주는 리포트나 책을 준비할 때 좀처럼 이런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 P245

현대 의학이마침내 심신(心身)의 불합리한 정신적 힘을 깨달았듯이, 머지않아 도시 계획자들은 도시의 경험적 현상적 힘이 완전히 설명될 수 없고 주관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 P245

나는 이번 논의를 다섯 부문으로 구성했다. 도시 파편City Fragments, 다공성Porosity, 삽입Insertions, 관구Precincts, 융합Fusion. - P246

도시 기폭제로서의 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나의 논의는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이상적인 증식 행동들에 대한 것이다. 끝없이 논의되고 정치적으로 뒤얽히는 마스터플랜은 너무 느려서 21세기에는 비효율적이다. 대개 슬그머니 변경되거나 폐기되어 버린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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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하는 기로에서 나는 대부분 하기를 선택하며 살았다. 그러고는 물론 많은 후회를 해왔지만, 이번에도 애를 써보기로 했다. - P214

다음 일요일에도 찾아올 언니들을 위해 나는 칭찬의 말을 열심히 준비하고 싶었다. 최대한 정확한 칭찬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들보다 덜 살아서, 그리고 덜 알아서 열심히 읽는 수밖에 없었다. - P224

여러 해외드라마에 사로잡히고 뉴스를 보며 어지러움을 느끼고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 모두를 걱정하는 봄이었다. - P232

인간들은이미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환경은 갈수록 나빠질 텐데,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P232

것은 양자택일의 기능 중 하나다.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이제 의자에 앉아줄래?"라고 요청하면 말을 잘 듣지 않지만, "이 의자에 앉을지 저 의자에 앉을지 선택해"라고 말하면 갑자기둘 중 하나를 열심히 골라서 앉게 되는 것과도 비슷한 작용이다. - P247

"어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만 더 예뻐하잖아요!"
한두 명이 "맞아" 하고 맞장구친다.
이안이가 한 번 더 못을 박는다.
"진짜 그래." - P251

천사들은 몹시 많은 흔적을 남기고 내 집을 떠난다. 한두 편의글도 남겼지만, 그들은 원고지 같은 건 챙기지도 않고 돌아선다. - P259

맨 처음 온라인 수업에서 가장 어색했던 건 잡소리가 들리지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대부분 음소거 상태로 수업에 참여해서다. - P262

아이들의 목소리는커녕 기침소리, 하품소리, 웃음소리, 한숨소리 등이 전혀 들리지 않는 채로 말을 하려니 어색하고답답했다. 잡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야기의 길이를 조절하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했는데, 음소거 상태로는 그 소중한청각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번째 수업부터는 음소거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열 명 이하의 소규모 수업이라 음향문제 없이 잡소리가 공유되었다. - P262

두 문장의 관계를 섣불리 확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그 사이의 접속사를 뺀다. 두 문장들의 상호작용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지만 어떤 행간은 비워둘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 P275

상대방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마음과 내 몫의 라면을 한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은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 P276

"그 사람은 날 너무 잘 알고 넘치는 사랑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며 날 지옥에 던져놓는다."
이 노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천국과지옥을 예기치 못하게 넘나드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아가게도 하고 헷갈리게도 하며, 날 가지고 노는 동시에 내가 이겨나가도록 도와준다. - P278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복합성이라고 느낀다. 이 동시다발적인 복잡함에 대해 말하는 게 문학일지도 모르겠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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