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는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칩을 주었다. 풀뿌리 환경운동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황폐해진 야생동물의 서식지도 노력을 기울인다면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성과에 고무된 우리는 천연 서식지를 보호하고 복구하는활동을 하는 소규모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 P110

직원이많고, 간접비가 발생하고, 기업과 연줄이 있는 대형 비정부기구(NGO)는 피했다. 1986년 우리는 지역의 풀뿌리 환경단체에 매년 수익의 10퍼센트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세전 수익의 10퍼센트나 총매출액의 1퍼센트 중 큰 액수로 분담금을 높였다. - P110

우리는 이런 외부적 문제를 개선하는 것 외에 회사 내부를 살피고 상업적 오염원으로서의 우리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점도 인식했다. - P111

1984년부터 폐지를 재활용하기 시작했고 카탈로그를 만들 가장 재활용도가 높은 종이의 공급원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는 미국 최초로 재생 종이를 이용해 카탈로그를 만든 기업이 되었지만 첫 시즌의 결과는 참혹했다. 아직 시험 단계였던 재생지에는 잉크가 잘 스며들지 않았다. 사진은 흐렸고 색상은 우중충했다. - P111

우리는 건축이나 리모델링 계획에 독성이 낮은 재활용, 재사용 자재를 사용할 방법을 연구하고 개척했다. 우리는 웰먼, 말덴밀스와 함께 신칠라 플리스에 사용할 재생 폴리에스테르의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1리터짜리 페트병 25개로 신칠라 플리스 재킷을 만들 수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P111

보험사는 모든 소송을 재판까지끌고 가지 않고 배상으로 해결했다. 보험료가 1년 만에 2000퍼센트 올랐다. 결국 쉬나드 이큅먼트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직원들에게 인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들은 자산을 성공적으로 인수했고 회사를 솔트레이크시티로 옮겨 블랙다이아몬드(Black Diamond Ltd.)를 만들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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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크리스 맥디비트가 그 자리에 앉았다. 어려운 시기에 일을 인계받은 그녀는 이해가 빠른 사람이었다. 파타고니아는 비로소 소유주들의 변덕스런 창의성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사업부장을 갖게 되었다. - P81

크리스는 자금 조달을 안정시키고, 영업인력을 격려하고, 공급업체들을 회유해서 독점 계약을 따내고, 산만한직원들을 다독이고, 친밀감과 풍부한 감성으로 회사를 하나로 뭉치게만들었다. 한편으로 그녀는 디자인과 예술 부서를 면밀하게 감독해서파타고니아의 이미지를 확립하고 그것을 지독하게 지켜냈다. - P81

내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입증되기까지는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 P81

그들이 도움을 주었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면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애를 써요. 그렇게 해서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죠. 저는이본이 회사에 대해 가진 비전과 목표를 해석해 내는 사람이었어요. - P83

난 정말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가가 되려면 좋은 명분들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절대 놓치고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일은 늘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일터로 오는길에는 신이 나서 한 번에 두 칸씩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라야 한다. - P85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입고 심지어는 맨발로 일하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유연한 근무로 파도가 좋을 때는 서핑을 하고 함박눈이 내리면 스키를 타고 아이가 아플 때는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볼수 있어야 한다. 일과 놀이와 가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 P85

나는 어떤 일에든 사전 준비를 다 갖추기 전까지는 거기에 뛰어들지않는다. 1978년 빙벽 등반 기술에 대한 책을 냈는데 이 책을 내기까지12년이 걸렸다. - P85

나는 항상 내 자신을 80퍼센트까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나는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활동에 80퍼센트의 능숙도를 달성할 때까지 열성적으로 임한다. 그 수준을 넘어서려면 집착과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일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 P89

80퍼센트수준에 이르면 시들해져서 전혀 다른 일로 이동한다. 파타고니아의 제품 라인이 그토록 다양하고 우리의 다재다능하고 다면적인 의류들이크게 성공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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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대 탈비판 - 2000년대 현대 건축 논쟁
마이클 헤이스 외 지음 / 아키텍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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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된 당시에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탈비판논쟁은 국내에서 여전히 인지 조차 못한 실무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너무나 중요하고 흥미로운 논쟁이다. 유수의 논객들의 저마다 통찰력있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번역이 우수하다. 믿고 보는 번역가의 힘은 단지 번역에서 뿐만 아니라 해제와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준미달의 번역이 판치는 건축서적 중에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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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체제하에서 긍정에 대한 요구는 거의총체적으로 이뤄졌고, 오늘날에는 대학과 미술관에도 비판critique을 위한 공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 P187

한때 아방가르드 예술의 대중적 수용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비판적 토론을 더 이상 장려하지 않는다. 실제로 예술계에서 비평 criticism은 철저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덜 받는 상황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 P187

탈-비판적 조건은 우리를(역사적, 이론적, 정치적) 구속에서 해방시켜줄 것처럼 간주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다원주의와 무관한 상대주의를 겨사해왔다. - P187

처음에는 판단judgment’에 대한 거부가 있었다. - P188

비판적 평가가 이뤄질 때 당연시되는 도덕적 권리에 대한거부가 있었던 것이다. - P188

그 다음엔 권위authority’에 대한 거부, 말하자면 비평가가 타인을 대신해 추상적으로 말할 수 있게해주는 정치적 특권에 대한 거부가 있었다. - P188

마지막으로는‘거리distance’에 대한 회의가, 즉 비평가가 심사하고자 하는 조건 자체와 문화적으로 분리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 P188

‘비판(critique)’과‘비평(criticism)’, ‘비판이론(critical theory)‘, ‘비판적 예술(criticalart)‘ 사이의 미끄러짐이 일어난다. 이 글에서 나는 마지막 두 개념에초 점을 맞출 것이다. - P188

건축 논쟁에서 ‘탈-비판‘이란 말은다른 가치를 갖는다. 건축 논쟁에서 이 말은 피터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들이 행한 건축의 재귀성에 대한 이론적 탐구 이후 이와 선 긋기를 하며 ‘디자인 지능 (design intelligence)‘이라는 갱신된 실용주의를 선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효과는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 P188

보다 최근의 공격들, 특히 재현 비판과 주체 비판에 대한공격은 연좌제의 성격으로 행해져 왔다. - P190

재현 비판은 그것의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기보다 진리-가치 자체를 약화시킴으로써 도덕적 무관심과 정치적 허무주의를 키운다고 얘기되었다. - P190

주체 비판 또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그것이 정체성의 구성적 성격을 드러내는 방식이 주체적 위치에서의 소비주의 (‘베네통 The United Colors of Benetton’으로 재포장된 다문화주의 사례처럼)를 교사한다고 얘기되었다. - P190

비판에 대한 더욱 예리한 질문들은 과학 연구 분야에 집중하는 브뤼노 라투르와 현대 미술을 주요 화두로 삼는자크 랑시에르에게서 나왔다. - P191

라투르에게 비평가란 순진한 타인들이 갖는 페티시즘적 신념의 신비감을 깰 수 있게-이런 신념이 어떻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물체에 자신의 소망을 투영" 하는지를 드러낼 수 있게-해주는 계몽된 인식을 가장하는 자다. - P192

비평가의 치명적인 실수는 이러한 반 페티시즘적 시선을 자기만의 신념, 즉 자기만의 신비감 깨기demystification라는 페티시를 향해서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자신을 가장 순진한 존재로 만드는 실수다. - P192

랑시에르에게도 비판은 신비감 깨기에 의존하면서순수성을 잃는다. - P193

"현대인들은 자기들이 계몽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현대인은 원시인만큼이나 페티시스트다-상품에 사로잡힌페티시스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부적절하게 욕망하는 모든사물에 사로잡힌 페티시스트다." 이런 논리적 뒤집기에라투르는 이제 자신만의 뒤집기를 시도한다. - P194

라투르도 그가 절단 내고 싶어하는 비평 자체의 수사학적 고리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 P194

랑시에르는 비판에서 작동하는 의심의 해석학에 대한 이러한 도전에 프랑크푸르트학파 식으로 끼어든다. 하지만 이런 도전은 비판이론 내에서 친숙한 것일 뿐만 아니라, 숨겨진 의미의 탐색에서 (푸코에게서 볼 수 있는) 담론적 "가능성의 조건 theconditions of possibility"과 (바르트에게서 볼 수 있는) 텍스트의 표층적 의미 등에 대한 고려로 옮겨가는 비판이론의 변화에도 근본적이었다. - P194

결국 그는 "감각적인 것의 재분배"를 하나의 만병통치약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사물을 기호로 바꿔버리는 변화"에 맞서 겨뤄야 할 때 그러한 약은 거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좌파 예술계의 새로운 아편일 뿐이다. - P195

최근의 미술사도 거의 그와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이미지들은 ‘힘’이나 작용인을 갖고 있다고 얘기되고, 그림들은 ‘필요’나 욕망을 갖고 있다고 얘기되는 식이다. 이는 최근의 미술과 건축에서 주체성의 관점에서 작품을 제시하는 비슷한 경향과도 일치한다. - P196

이런 식으로 ‘자신이 뭔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기‘라는 현상학적 재귀성이 그 반대 효과에, 말하자면 우리를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설치물이나 건물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사유와 감정을 가져와 이미지와 효과로 가공한다음 다시 우리에게 전달해 우리의 놀라운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역시 페티시화의 일종이다. - P198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냉소적 이성cynical reason’의 경우도마찬가지다. 우리의 문화생활에서도 정치생활에서도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없애버리는, 다 알면서도 무시하는 태도말이다. - P199

문제는 진실이 늘 가려져 있다는 게 아니라 (이 점에서라투르와 랑시에르는 옳다) 많은 게 너무 지나치게 명백하다는 데있다—다만 어떻게든 반응을 차단하는 투명성을 갖춘 채말이다. - P199

"대형 미술관은 대중문화보다 금융자본과 더 관계가 깊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와 같은 태도가 그렇다. 냉소적이성은 인정과 부인이 결합한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식의) 페티시즘적 작용이기에 반페티시즘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P199

주어진 것에 개입해 어떻게든 그걸 전환하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전환의 시작점이 되는 게 바로 비판이다. - P200

‘사회실천 예술‘에 대해 말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런 이름은 예술이 일상생활과 얼마나 분리돼 있는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러한 간극을 메우고자 한다. - P200

드보르는-변증법을 상호확증파괴MAD2의 방식으로이해하면서-한때 이렇게 썼다. "다다이즘은 예술을 실현하지않고 폐지하려 했으며, 초현실주의는 예술을 폐지하지 않고실현하려 했다." - P201

경제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오가고, 정치적으로는 비상사태가 예외적이기보다 정상적인 상태가 되며, 예술적으로는 일부 실천가들이 경제위기와 정치적 비상사태를 연출(다다)하거나 이런 혼란을 딛고 건설(구성주의)하거나 그 혼란에서 도망치며 질서로 회귀하는시대 말이다(1920년대에 신고전주의 전통의 퇴락한 버전들로 회귀하던 경향은 오늘날 모더니즘 회화와 조각의 오래된 작품으로 회귀하는 경향과 유사할 것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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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비판과 탈비판 논쟁에 대해서는 각주 하나로 간단히 언급하고 말지만, 건축계의 논쟁보다 더 일반적이고 사상적인 차원에서 탈비판적 논리의 핵심을 파고드는 글이다. - P183

‘아름다움의 찬미‘는 비판을 소거하는 구실로 곧잘 작동하는 유미주의 - P183

‘정동의 긍정‘은 비판적 이성의 대안처럼 제시되곤 하는 후기구조주의 - P183

‘감각적인 것의 재분배‘는 정치적 비판성을 미학적 감각의 문제로 재설정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 P183

‘일반 지성 general intellect에 대한 신뢰‘는 마르크스가 기계류에 붙인이름인 ‘일반 지성’ - P183

무엇보다도 포스터가 가장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판에 대한 비판자’로서 가장 예리한 논리를 보여주는 브뤼노 라투르와 자크 랑시에르인데, 반페티시즘도 페티시즘이라고 비판하는 그들의 메타비판조차도 페티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 P183

비판과 탈비판을 다루는 이 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페티시즘’과 ‘반페티시즘’이다. - P184

페티시즘은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 만든 상상적 물신에 대한 미신이고, 여기서 물신적 대상은 유사-주체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주체와 대상의 위상을 전도시킨다. - P184

그런 부정적 모순의 실재를 드러내는 게 반페티시즘적 비판이라면, 그런 비판을 부정하는 탈비판이나 메타비판은 모순을 봉합하려는 페티시즘일 수밖에 없다. - P184

라투르와 랑시에르의 메타비판이 비평가를 페티시스트로 비판할 때, 메타비평가인그들 역시 페티시스트가 되는 모순에 빠진다. 그렇게 자기모순에 빠진두 철학자의 페티시즘을 지적하는 게 이 글에서 가장 어렵지만 흥미로운 부분일 것이다. - P184

페티시즘이 주체와 대상의 위상을 뒤집어 거리를 만드는 도착적인 ‘신비감 만들기‘ - P184

라면, 반페티시즘이 추구하는 ‘신비감 깨기‘는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를 허물어 아우라의 해체를 시도 - P184

하지만 이런 ‘거리의 소멸‘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진리처럼 신비화될수록 또 하나의 페티시가 되어 반페티시스트를 모순에 빠뜨리게 된다. - P184

비판은 모순이 감지될 때 작동하고, 모순은 합리성이 실패하는 지점인 논리적 ‘간극’에서 발생하며, 간극은 필연적으로 ‘거리‘를 상정한다. - P185

결국 페티시를 벗어나는 비판은 얼마나 ‘정확한 거리‘를 두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 P185

포스터가2015년에 펴낸 『불길한 새 시절』이라는 책 제목은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이란 말을 반대로 뒤집은 표현이다 - P185

즉 포스터가 바라보는 2010년대는 1920년대와 유사한 면이 있다. - P186

1920년대는 양차대전 사이에 낀 소위 ‘좋았던 옛 시절‘로 회자되지만, 사실 그 재즈 시대의 풍요는 곧 경제공황의 폭탄을 맞게 될 폭풍전야와 다름없었다. - P186

당시 유럽 예술의 이러한 다양성은 시대적혼란의 증거이자, "비상사태가 예외적이기보다 정상적인 상태가 되던상황의 증거였다. - P186

시대 변화에 따른 거리 소멸이 마치 탈비판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긴박하게 떠밀며 밀착하는 시대의 혼란은 또 다른 간극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모순은 계속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 P186

전자의 봉합적 환상에 도취하는 건 페티시즘이지만, 후자의 실재적 모순을 들여다보는 건 비판의 몫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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