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ㅣ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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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이,

삶을 꿈꾸는 이야기



<비에>는 표면적으로 로봇의 순애를 그린 SF 소설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비에는 하나에 의해 탄생했다. 그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하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리움을 배우고, 하나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펜스를 넘”고자 하는 의지를 품게 된다. 저자는 그런 비에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 사유하는 존재란 무엇인지 묻는다.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은 여전히 로봇일까?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는 것에 슬픔을 느끼는 존재를 어떻게 인간과 구분할 수 있을까?

 

<비에>는 그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또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동시에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통해 윤리적인 문제의식 또한 안겨준다.

 

짧지만 굉장히 강렬한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얼마든지 재독, 삼독을 할 의사가 있는 책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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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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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원제는 『Folklorn』 이다. 저자는 Folk(민족, 가족)와 Lorn(고독한, 버려진)을 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엘사가 이민자 2세대로서 겪는 소외감과 고립감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척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엘사에게 집은 “도망치고 싶은 곳, 잊고 싶은 곳”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고,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 엘사는 이 비상식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듯 물리학자가 되어 집을 떠난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돌아와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고전 설화들이 서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에밀레종, 바리공주, 심청전 등 작품 속 설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되거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다. 저자는 과거의 비극이 설화 속에서 반복되듯,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희생 역시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되풀이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엘사는 설화 속 여성들의 삶을 더듬으며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그저 “이방인”으로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품을 생각이 없는 곳에서 번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설화를 통해 이민자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신선했다. 또한 미지의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그것이 유령인지, 환각인지, 혹은 상상의 친구인지 확신할 수 없게끔 만들어 긴장감을 더했다. 이러한 모호함이 현실과 설화의 경계를 흐리면서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도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한국 설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나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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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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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는 텍스트가 넘쳐난다. 타인과 수도 없이 주고받는 메시지, 각종 SNS에 시시각각 올라오는 게시글과 댓글, 심지어 쇼핑몰에 달리는 후기까지.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텍스트를 생산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텍스트의 소비가 곧 독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짧고 빠른 소통 방식과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긴 글에 몰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신해 책을 읽고 요약해줄 사람을 찾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 “독서하는 대중은 듣는 청중이 되었다.” 시간을 들여 책 한 권을 읽기보다는 유튜브 강의나 요약 콘텐츠를 통해 핵심만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라틴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과거 라틴어가 소수 특권층의 언어였듯, 미래에는 깊이 읽고 사유하는 능력이 소수의 특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읽기의 위기’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편리함과 속도를 우선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점차 사고의 과정을 타인에게 위임하고 있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처럼, “스스로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읽도록 시키는 독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읽기의 중요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런 시대일수록 읽고 사유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사고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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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 - 지난 200년 법과학 발전의 놀라운 이야기
발 맥더미드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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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지문을 활용해 해결한 사건은 무엇일까?

너비 4mm, 길이 1cm의 작은 뼛조각으로 살인 사건의 유죄판결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과학수사의 모든 것>이라고 제목 붙은 것처럼, 이 책은 과학수사에 대한 온갖 흥미로운 내용들을 다룬다. 법의곤충학, 법의병리학, 법의독물학 등 세부 분야별로 챕터를 구성하고 실제 사례를 곁들여서 마치 방대한 과학수사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법과학이 어떠한 계기로 발전해왔는지, 또 누구에 의해 발전하여 지금의 체계로 자리 잡았는지 등을 세세한 역사와 함께 풀어낸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서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가상 인물이든 실존 인물이든, 우리가 수사물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곁들여 흥미를 더한다. 셜록 홈즈, 잭 더 리퍼, FBI의 후버 국장 등이 대표적이다. 16년간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한 뒤 범죄 소설가로 전향한 작가의 이력이 작품 곳곳에 잘 녹아든 듯하다.

 

마치 영상으로만 접하던 CSI를 활자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픽션이 아닌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그만큼 긴장감도 컸다. 덕분에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혔다.

 

과학수사나 범죄 수사물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평소 교양서를 즐겨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각 분야의 수사 기법이 발전하기까지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탐구해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경외심이 든다. 아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범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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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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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을 지배한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자매의 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나는 이 작품이 결국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의 우주다. 그러니 그 우주가 품어주지 않는 세상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부모에게 방치되다시피 자란다. 그것은 분명한 학대다. 학대는 육체적인 폭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를 외면하고, 자존감을 뭉개버리는 것.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 것. 이것 모두 정서적인 학대다.

 

두 부부는 트리스탄의 삶을 망가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둘째를 가진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흔히 이런 이야기는 첫째가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레티시아에게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쏟아붓는다.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가 동생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매일 밤 잠을 재운다.

 

현실적으로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다섯 살 난 아이가 부모처럼 꾸준히 갓난아기를 돌볼 수는 없다. 장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트리스탄의 결핍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가 받고자 하는 애정의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부모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매력적인 아이다. 처음엔 쉽게 다가가지 않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애를 좋아하게 된다. 트리스탄은 다정하고 영리한 아이니까. 트리스탄도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러나 부모가 던진 말 한마디가, 무정한 행동이 트리스탄의 안에 깊이 박혀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트리스탄에게 상처를 입히는 엄마를 보며 나는 서글프다 못해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자식한테 저렇게 악의적일 수 있을까. 당신이 그러고도 엄마냐고 묻고 싶었다.

 

이야기이 막바지에서 트리스탄은 엄마의 편지를 태워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가슴 저 밑바닥에 깊이 남는다. 그리고 다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불쑥불쑥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나는 트리스탄이 끝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겐 레티시아가 있으니까.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성향도 다르고 가야 할 길도 다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서로에게 완벽한 보완이 되어줄 것이다. 만일 이 작품의 뒷이야기가 더 이어진다면, 두 자매가 오래도록 서로의 곁에서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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