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소멸
한동일 지음 / 그린스트로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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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보통 약동하는 시기로 묘사된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 역시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을 뜻한다. 그렇다면 ‘청춘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꽃이 시드는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도시에서의 생존은 매일 나를 조금씩 떼어 내 도시에게 주어야 하는 일과도 같았다. 


이 작품에서 ‘도시’는 청춘이 소멸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개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세계, 더 화려한 삶을 꿈꾸면서. 그런데 어째서 도시는 젊음을 피워내는 공간이 아니라, 마모시키는 공간이 되어버렸을까.


이 글의 화자인 '나' 역시 막연한 동경을 품고 도시로 향한다. 그러나 그는 변변한 생계조차 꾸리지 못해 부모에게 생활비를 의존한다. 보다 못한 부모의 도움으로 연구소에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아남는 일은 녹록지 않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모욕과 멸시를 감내해야 한다. 그렇게 모욕을 견뎌내고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만 제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나’의 눈을 통해 묘사되는 청춘들은 단절되어있다. 사람들은 카페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고, 대화는 점점 사라진다. 함께 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 소통이 부재한 삶 속에서 고독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좋은 옷, 좋은 차를 갈망한다.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꿈꾸며 도시에 왔지만,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고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도시의 삶 속에서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후배마저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상실을 겪은 뒤에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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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책이지만 천천히 곱씹어 읽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책장을 덮은 뒤에는 나의 청춘은 어떠한가, 나는 내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됐다.


이 글의 막바지, ‘나’가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가 왜 그 순간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까운 우리의 청춘이 소멸해버리기 전에.



*본 리뷰는 헤스티아가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그린스트로우 (@greenstraw_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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