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평점 :
부패하지 않는 시신들. 마녀를 연상케 하는 주술 도구.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판사. 비밀의 책은 시작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잔악한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의 존엄이 땅에 처박힌 시대, 남성들은 ‘교육’을 핑계로, 혹은 그러한 핑계마저 필요 없다는 듯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을 방법이 뭐가 있었을까? 매일같이 느끼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탈출구가 오로지 독약뿐이었다면, 과연 모르는 척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수백 년 전 실제 로마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여성들은 여전히 폭력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현실에 여성들의 복수극을 보며 통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닐까?
그러나 몇 가지 의문도 든다. 이유가 타당하다면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아쿠아’로 사망한 남자들은 모두 타당하게 죽었나? 그 판단은 누가 내리는 걸까? 한 개인이 누군가를 죽일지 말지 결정해도 되는 걸까?
주인공 스테파노 역시 사건을 파헤칠수록 깊은 번민에 빠진다. 그는 학대받는 여성들을 보며 연민을 느끼다가도,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여성들을 고문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가치관 속에서 점차 무너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죄와 벌》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그만큼 스릴 있으면서도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하다. 결말까지도 도덕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지만, 그 통쾌함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