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혹은 자질구레한 일들, 때로는 소박한 평화를 즐기다 잊고 있었던듯 남은 페이지를 펴서 한 편이라도 다시 카버를 읽게 되면...그래, 이건 카버야. 이건 카버의 소설이지...깊은 한숨이 나온다. 다시 카버의 세계로 진입하기가 버겁다. 이 세계가 좀 더 현실과 가깝다는 걸 인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 읽었을 때 카버의 소설은 기이함과 삶의 불가항력적 비극 사이에서 기이함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번에는 후자의 요소가 내게 더 강하게 다가왔다.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놀랍고 대단하다고(It‘s really something)밖에는 말할 수 없다.
조금은 부러운 마음으로 금기를 금기시하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조금씩 앞으로 가는 나라 사람들-진보란 원래 앞으로 걸어간다는 뜻 아니었던가-을 읽는 시간은 신선한 충격의 경험이었다. 18세기에 혁명을 이룬 나라답게 모든 삐딱한 시선과 행동이 용인되는 나라...시위를 응원하며 반항심을 부추기는 나라. 그러나 때로 이들이 보여주는 좌파의식이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생활 속에 파고드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이러한 것이 좌파의 품격일까. 이 책 속 누군가의 말처럼 좌파가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서 소수를 대변하는 자라면 나또한 그 부류에 한 발은 걸친 것이 아닌가 조금은 위안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국적 토양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예다 같은 청년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한국의 생활좌파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