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주인공 레이첼은 매일 아침 8시 4분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가 저녁 17시 56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사실만 보면 ‘아, 레이첼은 기차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인가 보다.’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녀는 사실 출퇴근하는 게 아니다. 그 놈의 술 때문에 회사에서 잘렸고 얹혀살고 있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어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척 한다.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재취업하기 위해 일자리도 알아보기는 한다. 그러나 주로 기차 안에서 철로변 집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일과이다. 그 집들에 살고 있을 낯선 사람들의 안락한 모습을 보며 기차 안에서 진토닉을 몰래 마시는 것이다. 레이첼은 그 낯선 사람들 중 한 쌍에게는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술, 술, 술. 그녀가 처음부터 알콜 중독자였던 건 아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도 있었고 그 남자와 결혼도 했었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우울증이 왔고 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남편은 그녀를 떠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 레이첼은 기차 안에서 제스와 제이슨을 보면서 과거에 자신과 남편이 행복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레이첼은 기차 안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제스가 제이슨이 아닌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들은 레이첼을 알지도 못하고 레이첼 혼자 그들의 삶을 지켜봤을 뿐인데 레이첼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레이첼은 제스와 제이슨을 자신과 전남편 톰이라고 대입시키며 지내왔기 때문에 제이슨을 배신한 제스를 보며 전남편 톰이 자신을 배신한 게 떠올라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또 술을 마셨다. 제이슨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고,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레이첼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 날, 레이첼은 제스를 봤다. 그녀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신문 기사에서. 그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제스가 실종됐다. 제스의 실제 이름은 메건이었고, 제이슨의 실제 이름은 스콧이었다. 메건과 스콧. 메건이 실종됐고 남편인 스콧이 유력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었다. 레이첼은 스콧이 범인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매일 기차 안에서 봤던 메건과 스콧의 모습은 너무 다정하고 행복해보였다. 특히 스콧은 메건을 정말 사랑했다. 레이첼이 봤다. 스콧이 범인일리 없다. 스콧이 누명을 쓰지 않도록 메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경찰에 알리기로 다짐한다. 누가 범인일까? 그날 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소설은 총 세 명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레이첼, 메건 그리고 레이첼의 전남편 톰의 현재 아내인 애나. 레이첼의 시점에서 행복해 보였던 메건과 스콧은 사실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았고, 애나는 레이첼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각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독자들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렇게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가는데 도무지 누가 범인인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주된 화자인 레이첼은 이야기 하는 내내 거의 술에 취해 있다. 그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사실을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설마 레이첼이 범인은 아니겠지? 읽는 내내 설마, 설마. 근데 또 다른 화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이 범인 아니야? ㅋㅋ 이러고 있다. 그러면서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고 그날의 진실이 펼쳐진다.

재밌게 읽었다. 범인은 상상 못했던 사람이었다. 인생 전체가 거짓말 위에 세워진 사람이 범인이었다. 결말이 마음에 든다. 작가는 런던의 통근자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현재도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하며 버스, 기차 등에서 매일 똑같은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도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본 적 있다. 레이첼처럼 이름까지 붙여 줄 정도로 매일 관찰했던 사람은 없지만. 나는 과연 레이첼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기차를 타고 가다 뭔가를 목격했다면? 그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내 말을 믿어주기나 할까 생각하며 모른 척 넘어갔을까. 아니면 레이첼처럼 사건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어떻게 보면 레이첼이 오지랖 넓게 관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제스가 그 키스했던 남자와 바람이 나서 둘이 같이 도망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첼은 그 사건에 뛰어들었고 어쨌든 결국 그녀의 삶의 진실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게 돼서 다행이야, 레이첼. 이제 술 끊고 새 인생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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