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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산파는 거대한 코끼리요 출생지는 마구간이라. 세상에 나왔을 때 몸무게는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하고,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훌쩍 넘어선 거구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 녀의 이름은 춘희(春姬). 거대한 체구에 걸맞게 힘 또한 천하장사라,어설픈 장정은 그 녀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은 물론이요, 대장간의 쇳덩이를 마치 냇가의 조약돌인양 공기놀이를 하고 있으니 그녀의 명성이 조선 팔도에 미치지 않을 곳이 없어야 정상 이련만, 그녀의 태고난 능력을 시기한 신들의 장난인가? 그녀에게 말하는 법을 미쳐 가르쳐 주지 못한 삼신할미의 직무유기인가, 반편이라는 놀림속에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는 고약하고도 슬픈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라. 봄처녀 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녀의 삶은 평생이 어둡고 춥기만 한 엄동설한 이니.
출생의 비밀은 이미 다 까발려진 판에 밤 열두시만 넘으면 홀연히 마차가 나타나 멋들어진 공주로 변하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생길것도 아니요, 어느날 갑자기 심봉사 눈을 뜨듯 닫혔던 입에서 청산유수 같은 말들이 술술 터져 나올것도 아니건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련한 봄처녀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펼쳐진다. 금복이라는 어미의 이야기를 지나 이름 모를 할멈의 이야기 까지 말 많고, 탈 많은 삼대에 걸친 여인열전이 펼쳐져니 접시는 물론이요 기둥이 흔들리다 못해 뿌리까지 몽당 뽑혀 버릴만한 기상천외한 말들이 봇물 터지듯 펼쳐지고 있으니, 눈이 두개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초침,분침이 야속할 지경이다.
작가라는 사람이 영화판에서 놀다와서 그런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천상 한 편의 영화라. 시골 촌구석에서 무작정 도시로 나와 대박을 터뜨리는 금복이를 보고 있으면 인간승리를 다룬 휴머니즘이요, 부둣가에서의 활극을 보고있으면 스펙타클한 액션영화요, 뭇 남성들과의 애정행각들을 보고 있으면 찌릿찌릿한 애로물이라. 이리보면 이것같고 저리보면 저것같으니 굳이 쟝르를 따지자면 명절 끝물에 밥상에 오르는 이름모를 잡탕쯤 될듯하다. 한번에 이맛 저맛 다 볼수 있으니 잡탕도 그다지 나쁜 요리는 아니요, 다만 한가지 맛을 좆고자 하는 미식가라면 숟가락 젓가락 다 집어던지고 급기야는 밥상까지 뒤엎어 버릴수도 있으니,진수성찬도 사람봐가며 차릴것이요, 아무리 허기가 져도 찬찬히 내용물을 살펴보고 숟가락을 디밀어야 할것이다.
'천'이라는 작가 입심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능청스러운 이야기에 홀려 귀를 쫑긋 세우다 보니 주위엔 썩은 도끼자루가 수십개는 될듯하니, 그게 바로 관성의 법칙이요. 신나게 넘어가는 책장에 손가락이 아파 오른손,왼손 번갈아 침을 묻이고 있으니 이건 또 왼손,오른손 법칙정도 될것 같다. 코끼리하고 말을 하고, 뒤늦게 태어난 딸아이는 몇 년전에 죽은 아비를 쏙 빼닮고 있으니 이건 작가의 말대로 구라의 법칙 되겠다. 이런 법칙,저런 법칙에 홀려 두툼한 책을 다 읽었으나. 정작 고래라는 놈이 뭐 하는 놈인지, 그 놈이 이 구라같은 이야기에서 무슨 존재인지 하는 것은 도통 모르겠으니 그건 독자의 무지의 법칙정도 되겠다. 아무리 그래도 고래라는 놈의 정체정도는 파악해야 될듯 싶어 , 가뜩이나 나뿐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니 나온 답은 내 머리가 돌에 가깝다는 불변의 법칙밖에 없으니 퍼지르고 앉아 대성통곡을 해야 할 노릇이다.
고래라는 놈은 필경 바닷가에 사는 생선인데, 꼴 같지 않게 자기는 생선이 아니요. 네발달린 짐승처럼 젖을 빨고 사는 동물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으니 덩치나 작아야 모질게 쥐어 박기라도 하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그저 니 맘대로 하세요 할 뿐이다. 구라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니.작고 힘없는 것보다는 크고 힘센 놈이 좋다고 말한 금복이의 말이 불현듯 떠오르고, 그렇다면 새우나 토끼 이런 것 보다는 그래도 '고래'라고 하는 것이 덩치나 생김새를 봐도 구라같은 이야기의 제목으로 하기에 가장 어울릿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상 '고래'라는 것이 인간의 허왕된 욕망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가방끈들의 말도 , 고래등같은 '고래'극장이 한 순간에 불길에 휩싸여 버리는 걸 보면 완전히 구라는 아닐것 같기도 하다.
어쨋든 재미난 이야기를 신나게 들었으니 '천'이라는 작가한테 고맙다는 인사 한번 정도는 해 줘야 할 듯 싶고, 구라 같은 이야기에 '사람 참 싱겁네'하고 말기에는 내가 더 싱거운 사람 같고, 그러다가는 다음 번에 이 보다 더 구라같은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 같기에, 그냥 헛기침 한 번 크게 한 채 어물어물 이야기를 끝내는 게 좋을 듯 싶다. 다음 번 을 기약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