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아니다. 대선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표를 행사하지도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이 당선되기를 바랬지만, 실재 투표장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노무현은 대통령이라는 높고도 고독한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노무현의 뒤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노사모라 불리우는 그들은 일부 언론에서는 광신도 처럼 표현되기도 했지만, 거대한 권력을 움켜진 여타의 지지세력과는 분명히 차별화 될수 있는 끈끈한 힘을 가진 조직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으로써의 운명은 수많은 노란물결의 성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운명이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5공 비리 청문회를 통해서 였다. 절대권력의 극렬한 타락을 생생하게 지켜보기를 바랬던 많은 국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었다. 청문회 스타라는 명칭은 어찌보면 진정한 정치인이 아닌,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예인과도 같은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기게 충분했다. 힘있고 능력있는 정치인이 아닌, 유행이 지나고 인기가 떨이지면 어느순간 완벽하게 잊혀지는 연예인과 같은 이미지로서 더 많이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인기는 있지만, 핵심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가기에는 어쩐지 약해보이는 차선의 선택에 국한된 인물이었다고 본다. 최소한 그 당시까지 노무현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다.
 
사상처음 야당의 승리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노무현은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인권변호사 , 청문회 스타에서 해양부장관으로 제도권 정치의 중앙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몇 번을 거듭한 실패는 인간 노무현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거센 투사의 이미지에서 조금은 유연해지고 노련해진 정치인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노무현이 뚫고 나가야할 장벽들은 만만치 않았다. 오랜세월 3김이라는 이름으로 분배되어 있던 밥상에서 그의 밥그릇을 찾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YS를 떠나 DJ의 품으로 들어온 것도 자신의 밥그릇을 찾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성공적이었다. 몇 번의 실패와 위기를 뚫고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많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십년을 향한 반환전에 해당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노무현은 지금까지와는 상대도 되지않는 더 높고 더 강한 세력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힘겨운 운명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이다.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다른 이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노무현 재단이라는 이름의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리되었기 때문에 친 노무현 적일수 밖에 없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실패한 자의 구차한 변명거리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일생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여느 고학생의 성공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후 인권,노동운동에 뛰어 들게 되는 과정과 국회의원이 되어 정식으로 정치에 투신하기 까지의 과정. 급기야 대통령이 되어 5년이라는 시간을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과정들.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정치사의  최신 모습들을 재 조명해 볼수 있는 시간을 갖을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실패를 많이 했다. 타인이 보기에 가망이 없는 도전을 많이 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어찌 보면 가망이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기억될수 있는 건 무모한 도전을 위대한 성공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집념이 그를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단순히 노무현을 미화하고 변명하고 그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며 후회되는 부분과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과 죄스럼움을 감추지 않고있다. 그래서 솔직하다. 물론 커다란 줄기는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합리화 시키고자 하고 있지만 그런 모습또한 눈에 훤히 보이기에 많이 거슬리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수 있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 하는 실수와 대통령 노무현이 하는 실수는 결코 같지 않다. 그 실수에 수반되는 댓가를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무게감이 비교가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인간 노무현의 실수는 용서될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써의 실수는 쉽게 용서를 구하기도 용서를 받을수도 없다. 국민들은  그를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 노무현보다는 대통령 노무현이 더 좋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보다 더 많이 욕을 먹은 사람이 있을까? 언론과 검사를 비롯한 대다수의 권력층에게 공격을 당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동지들에게도 외면을 당하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사람.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고 명확하게 말했던 사람.탄핵이라는 초유의 물결에 휩쓸렸던 사람.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했던 만큼, 그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를 비판하고 따돌렸다. 많은 계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욕을 먹는 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방증일수도 있다. 그 전까지는 자신의 요구를 떴떳이 밝힐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는 채널을 부여해 준 사람. 듣고싶지 않고,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보고,듣기 위해 무수히 많은 채널을 만들었던 사람. 우리는 그것을 소통이라고 말한다. 9시 뉴스가 나오는 시간에도 다른 채널에서는 프로야구를 하고 있고, 드라마가 나오고 있으며 인기 아이돌 그룹들의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바둑,낚시,골프,요리,맛집기행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제목부터 야릇한 성인방송까지 끊임없이 많은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 모든 소리에 다 귀를 기울이고자 했고, 그 모든 채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게 만든 사람. 그러다 보니 잡음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채널을 가지고 있지만, 리모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된 몇 개의 채널만을 고집한다.개인적 취향이 정해져 있기에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듣기에 좋은 것만을 고집하여 다른 채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잡음은 듣지 않아도되겠지만, 그 속에 묻혀져 있는 진실의 목소리 또한 들을수 없게 된다. 최소한 리모콘의 주인이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나의 선호채널 속에는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채널이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그것을 소통이라고 말한다.  
 
민주(民主)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민주라는 말의 시대적 역사적 의미는 변하게 마련이다. 유신시절 과 군부독재 시설 외쳤던 민주와 지금 시대에 외치는 민주의  시대적 의미는 결코 같을수 없다. 물론 원론적인 민주의 의미가 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원론적인 의미의 변화는 없지만 시대적 역사적 변화에 걸맞게 민주라는 의미도 변해야 되며, 그것을 정확하게 외쳐대는 것만이 진정한 민주를 이루기 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것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이며,운명이다.
 
자식들에게 만큼은 훌륭한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평범한 아버지의 소박한 꿈은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 노무현이 가진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먼 곳에서 편안하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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