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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원 제목은 ‘내심(內心)’이라고 한다. ‘달을 먹다’라는 제목은 책을 내면서 바뀌게 된 것 같은데 왜 바꿨을까? 내심이 훨씬 나은데…
사랑이야기는 흔하기 때문에 그만큼 잘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 마르케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은 한 남자가 여자를 평생 짝사랑하는 걸 가지고 책 두권을 채우느라 결국은 해피엔딩인데도 읽는 내가 진이 다 빠졌었다.
‘달을 먹다’는 한 권의 책 안에 최소한 서너 가지 이상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번엔 좀 정신이 없다.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로 넷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의 장 속에는 ‘묘연의 첫번째 이야기’’기현의 이야기’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이 두세장씩 들어있다. 처음엔 글들이 두세장씩 끊어지니 쉬었다 볼 때 기억하기도 좋고 조선시대 이야기 임에도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여러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있어 자꾸 호흡이 끊긴다.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기현의 이야기’라는데 기현이 누구였지? 하면서 다시 앞장을 들춰본 일이 다반사였다.
다음은 문장. 작가는 이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 엄청다양한 자료들을 보고 오랜시간 조선시대의 풍습이나 문학작품들에 대해 조사했을 것 같다. 그가 쓴 모든 문장들을 완전히 다 이해했다면 지금쯤 나는 조선시대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소설에도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말로 쓴 소설임에도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몇 개 정도면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겠지만 나의 경우엔 소설에의 몰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파악하는 것 까지도 힘들게 만들었다. 국어사전이라도 찾아가며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공글러 속으로 밀어넣어두었던 마음들이 추야장 잘깃한 괴로움을 어쩌지 못하고 제풀에 매워졌다.”(p.193)
나는 공글러가 명사인지 부사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여문의 부인인 양지에 대한 설명 부분.
“매사를 사날로만 해결했고 오만방자했으며 안하무인이었다.” (p.106)
사날이라는 단어는 처음이다. 이럴 땐 그냥 문맥상 짐작해서 이해한다. 다음은 묘연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
“첨첨지말이라고 아주 뾰족하니 날렵한 버선을 신고 소리없이 흐느적거리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나는 저절로 속이 메슥거렸다.
아버지가 묻히고 들어오는 바깥 밤바람은 비릿했다. 쇠북이 서른 세번 울어 파루가 끝나면 어김없이 귀가하던 아버지의 냄새였다. 비 오는 날 꼭꼭 숨겨둔 달거리포처럼 역했다.”(p.13)
첨첨지말, 쇠북, 파루, 달거리포. 이 부분에선 내가 모르는 말이 네 개나 나온다. 이럴 땐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읽으니 소설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소설 읽는 기분이다.
고증을 거쳐 조선시대스러운 문장을 만드는 것과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는 문장을 쓰는 것. 어느 것이 우선일까? 나는 대학까지 마쳤지만 이 소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문학적으로는 완성도가 높고 아름다운 문체일지 모르지만 나는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아주머니,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도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좋다. 나는 그런 문장을 더 선호한다. 다른 건 대중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세상과 타협하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문장 만큼은 좀 대중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정신없다’, ‘자기 멋에 빠진 문체다’라는 불평들이 공통적으로 나오는데 나 역시도 공감하는 바다. 사실 그의 문체가 내 취향에 맞지 않다 뿐이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문학의 발전에 있어서는 이런 식의 문체로 만들어진 작품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다만 좀 더 내공을 쌓아 독자들에게 흡인력이 있는 문장을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는 이 소설로 등단한 작가이므로, 앞으로 점점 나아지는 더 좋은 작품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