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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난아기 - 소아과 의사가 신생아의 눈으로 쓴 행복한 육아서
마쓰다 미치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뜨인돌 / 2010년 6월
절판


나는 갓난아기라는 조금은 특이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소아과 의사가 갓난아기의 눈으로 본 육아서라는 점에서 제목만큼이나 독특하다.-감수의 글쪽

나는 그저께 태어났다. 아직 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는 잘 들린다. 이 산후조리원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도 기척으로 알 수 있다. -19쪽

이삼 일 전부터 내 뺨이며 이마에 작은 여드름 같은 오돌도돌한 것이 생겼다. 아침마다 나를 안아 주는 아빠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서 말했다.
"엇, 이거 혹시 무슨 피부병인가? 아니면 나쁜 유전병?"
"무슨 그런 흉한 소릴 해!"
엄마 아빠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벌어지는 참에 옆집 아줌마가 왔다.
"삼출성 체질이네"-26-27쪽

이제 겨우 15일 밖에 안된 터라 인생을 논하기는 좀 이르지만, 우리네 삶의 어디에 어떤 무서운 것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이후로도 이 무시무시한 유아학대가 일주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인권유린이다. -28쪽

이 선생님, 정말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완전히 다시 봤다! 치료하건 하지 않건 마찬가지라는 것 백번 천번 옳은 말씀이다. 나는 이제 무시무시한 주사를 맞는 유아학대에서 마침내 해방되는 것이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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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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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다시 보는 모차르트

내가 스스로 클래식 음반을 찾아 들었던 첫 시기는 중학교 때였다. 그 때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들으면, 세상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은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면서도 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어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곡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던 한 청소년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작곡시기인 32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이 책을 읽고 다시 들으니, 그가 인간적으로 다시 보이는 듯하다. 또한 그가 왜 당대부터 지금까지 영향력 있는 음악가인지 그저 느낌으로만 알았던 나는 이제 그것을 객관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지식도 함께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그를 천재이거나 경망스럽거나 둘 중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소감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눈을 감은 채 한 부분만을 더듬거리다 이제야 비로소 전체를 조망하면서 그것이 코끼리였음을 알게 된 기분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공정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장치들

‘삶과 음악’이라는 제목이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1756년부터 1791년까지 그의 일대기에 따른 삶의 부분과 장르별 음악의 부분이 교차배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모차르트의 시대를 개괄하고, 마지막에는 18세기의 과학, 문학 등 분야별로 해설한 시대 배경, 책에 나오는 인물과 용어해설이 붙는다.

저자는 책의 전/후반부에서 역사적 맥락을 평이한 언어로 해설해 놓았을 뿐 아니라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악보라는 자료를 완전히 배제하고 음악 CD와 통합적이고 전반적인 곡의 해설로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설명하였다. 특히나 음악에 관해서는, 화성이나 대위법적 특징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피해간 것이 눈에 띈다. 음악과 관련한 유명한 작가, 음악가, 방송인으로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분명히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의 독자를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까지’로 잡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그 원칙을 지켰다.

여기에 덧붙여 이 책의 독자에게는 음악CD 2장과 낙소스 웹사이트 접근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영어로만 되어 있는데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에 비하면 생각보다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 더 넓은 세계가 열리리라는 기대를 안고 접속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용어집이었다. 리토르넬로, 폴리포니 등 음악 전공자들에게도 낮선 용어 뿐 아니라 아다지오나 셋잇단음표 같은 기초적인 음악이론에 대해서도 해설을 곁들였다. 이 정도 해설이면,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 마다 졸지 않은 사람은 저자가 바라는 바와 같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의 삶

모차르트는 1756년, 당시 유명한 바이올린 교본의 저자이기도 음악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신동을 인정받은 그는 소년시절 상당기간 동안 연주여행을 다닌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소년 모차르트는 밝고 조숙했지만 연주든 작곡이든 뭔가 이루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아이였다

  

성년이 되면서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잘츠부르크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고 작품성과 상품성이라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작곡가가 되었지만 그의 삶이 평탄치만은 않다. 가족을 중시했던 그에게 어머니의 임종을 혼자서 지킨 것이나 첫 아이를 9주 만에 잃은 일은 가혹하리만치 쓰라린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두려움과 영웅숭배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끝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사실상 의절하다시피 한 것도 그에게는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온 사람이었음에도 경제문제는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연이 성공하면 큰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왕이나 귀족이 원하는 작품이 아닌 자기 세계가 담긴 곡을 쓰자니 안정된 수입을 갖기 어려웠고, 자신의 곡에 대해 로열티를 받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워낙 유행과 장식을 좋아하는 탓에 사치가 심해, 죽어서도 빚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모차르트는 매우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곡을 쓰기 시작하고, 레슨을 하고, 연주를 하다보면 하루가 꽉 차는 일정이었다. 베토벤과는 달리 언제나 연주자의 기량을 넘어서지 않는 곡을 쓰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음악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베토벤이 첫 프리랜서 음악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놀랐던 것은 모차르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틀에 가두는 권력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사실이었다. 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p.134)

스스로만 벗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때까지의 ‘멜로디-반주’라는 틀을 깨고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두 요소의 끊임없는 ‘대화’ 체제를 형성하였고, 오케스트라에서 관악파트를 해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피아노 파트보> 


 

<임종 마지막까지 썼지만 스스로 마무리하지 못한 미완의 역작. 레퀴엠의 악보.> 


그는 유럽에 전쟁과 유혈혁명, 난폭한 변화가 잇따랐던 18세기 중후반의 음악가로, 그의 고전파 음악양식 안에도 역사적 맥락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근본적으로 안정과 변화의 교대, 두 개의 주음(key-centres)이 빚어내는 긴장을 토대로, 세력의 대치 상태가 풀리면서 절정에 이르는 유토피아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고전주의 음악양식(이른바 소나타 형식)은 그가 살았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했던 땅에서는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근대로의 전이가 비교적 느리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던 것이다.’(p.9)

  

<변화와 혼란의 18세기 유럽 . 프랑스혁명(1789)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일어났다.>

이러한 안정과 변화, 두 개의 주음이 빚어내는 긴장은 그의 음악의 오페라적 요소를 논할 때는 ‘대화’라는 요소로 불리게 된다. 거기에 마치 문학작품이나 심리극처럼, 원인과 결과, 진술과 반응이 이루어져 하나의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성격이 묘사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는 대화와 서정성, 성격묘사라는 세가지 요소를 인식하고 듣는다면 더 깊고 흥미로운 그의 음악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와 닮은 꼴,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모차르트는 어떤 면에서든 과장을 극도로 혐오했다’.(p.91)

그러나 그의 사후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떤 면에서든 그의 한 부분(신동, 자기 앞가림 못했던 경망스러운 천재 등)을 과장한 것이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자료가 충분히 많은데다 어느 시대에나 대중의 관심거리가 되는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주제별 접근에 따른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정한 해석이 쉽지 않은 작곡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존에 그려졌던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넘어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주변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일관성을 가지고 그에 대한 공정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엄청난 교육열, 끊임없이 유행에 맞는 옷이나 장식을 구입하는 사치스러움에서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와 아버지 사이, 성년이 된 모차르트의 심리와 같은 부분, 그가 곡을 쓸 때 즐겨 사용하는 음악적 표현상의 특징, 그의 인생 후반부에 깊이 가담했다고 알려진 프리메이슨에서의 활동내용 같은 것들에는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욕구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들어가는 것은 이 책의 기본 목표에 어긋난다. 그것들은 이 책을 통해 모차르트를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독자들의 심화학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이미 모차르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를 공정하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모차르트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매우 좋은,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서론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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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입학사정관제다 - 입학사정관 전형, 뽑는 사람과 뽑힌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 입학 사정관 전형 준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 가이드
고한석 외 지음 / 한겨레에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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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작성하려는데  

너무 막막했다. 나는 한번도 그런 건 어떻게 쓰는지 남의 걸 구경하거나 누구한테 

노하우를 배워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어떤 부분을 강조하며 쓰면 되겠다, 문장은 간결하게 쓰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어렴풋하게 어디선가 주워들은게 있어서 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인터넷에서 남의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를 참고삼아 보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건지도 보장이 안되고, 그냥 검색만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그런건 잘 공개를 안하는 건가보다.   

입학사정관제는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는 대학의 전략이라고 하니,  

이 책의 조언에 대학원 입시생인 나도 귀기울일 내용이 많이 있겠지 싶었다.  

(취업대비용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책도 있긴 했지만  

학교가 아닌 직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 그런지 써먹을 만한 내용이 별로 없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입학사정관 전형, 뽑는 사람과 뽑힌 사람 

2부, 입학사정관 전형,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1부는 인터뷰내용들이어서 이 제도 속에서 사정관들과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 있었고, 2부에선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추천서, 면접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책을 사고 한 일은 우선 이 책 속의 엄청 많은 예문들을 읽어본 것이다. 전공은 다 달랐지만, 

대충 공통점은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입학사정관들의 조언은 이런 것들이다. 

-자기가 원하는 전공과 관련된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전공에 대한 열정과 함께 대학수학능력은 기본. 

-불리한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 중요. 

읽어보면 당연한 말들 같지만 나 혼자서는 알기 힘든 것이다.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책을 몇권 사서 읽어보았는데 나에겐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여기 있는 자료들과 예문들은 다 훌륭하지만 그런 것은 다른 책들도 부분적으로는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결국 쓸 땐 내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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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예찬 - 야생의 숲, 문명의 영혼
김창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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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 졸립다’하고 나는 낮잠을 잤다. 이 책을 옆에 끼고서.

꿈 없는 잠이었다. 나는 혹시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을 헤메는 꿈을 꾸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 땅은 나의 꿈에 나타나기에는 아직 너무 멀었나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시베리아를 보고 느꼈지만 집에서 관악산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있는 나에게 그곳은 여전히 아득하게 멀다.

7000원만 지불하면 손쉽게 두 시간의 ‘다른 세계’를 제공해주는 영화관의 영화들과는 달리 도시인에게 시베리아라는 ‘다른 세계’는 그 감정적인 거리는 물론 너무나 불친절한 교통시스템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어머니 자연이 태초의 비밀과 원초적인 푸근함을 가지고 인간을 맞이하는 그곳은 안타깝게도 저자와 같은 관련 학자나 쓰고 남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 외에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지 못 했는가 다각도로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도시인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공간으로만 비쳐졌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종종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것, 깊이가 있으면서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유용성을 추구하는데 이러한 이중적인 기준은 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사실상 한국과 같은 종자인 시베리아 호랑이, 러시아 땅에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인 고려인, 평화롭고 고요한 삼림지대는 이미 도시인인 나의 기억과 경험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제대로 된 무당을 보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그들이 가진 사상인 샤머니즘의 원조가 시베리아에서 나왔다니. 나는 텔레비전에서조차 호랑이나 고려인을 손에 꼽을 정도로 보았을 뿐이다. 갑갑한 도시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면서도 신혼여행으로 갈만한 동남아시아나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있는 서유럽이 아닌 동토(凍土)의 땅 시베리아는 ‘꿈꿀만한 다른 세계’라기보다는 ‘남의 얘기’같다.

그러나 그곳이 너무 멀고, 평생 ‘나의 이야기’는 될 수 없다 하여 시베리아라는 지구상의 한 공간을 ‘예찬’한 이 책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인문학적, 지리, 생태적 지식과 시베리아를 이야기하고 묘사했던 작가의 작품들, 저자 자신만의 문장력을 동원해 도시인에게는 아직 안개 속에 가려있는 시베리아라는 공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시베리아의 자연과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생태적인 관점에서 그곳을 예찬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공간을 둘러싼 문학과 예술, 사상을 다루었는데, 곳곳마다 놀라운 정보력이 일단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내가 집 안에서 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하는 수고만 감수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책이 그 이상인 것은 끊임없이 ‘왜 시베리아인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역동적이지만 성급하고 비인간화 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다른 세계’로서의 시베리아, 근원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영구히 귀속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땅, 야생과 문명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본향으로서의 시베리아(p.11), 조선 말기 먹을 것을 찾아 인적 없는 그곳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되풀이된 이주의 고달픔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고려인들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시베리아, 황량하고 가혹하기 그지없는 동토, 사람이 아닌 죄수의 신분만 허락되면서도(p.129) 존재의 운명과 그 창조자로서 신의 영역에 복종하게 되는 도덕적 정신적 정화의 공간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안겨주는 시베리아, 그러한 감정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나 크로포트킨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러시아 작가와 사상가들의 문학적 영감이 되었던 땅, 시베리아.

도대체 러시아 예술가들의 독특하고 강렬한 감수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중국은 러시아와 같이 광대한 토지와 개발이 거의 안 된 자연을 가지고 있지만 문학적, 사상적인 느낌은 상당히 다른 것을 보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회오리를 타고 구름 속을 여기저기 떠돌다가는 어느덧 별천지 같은 세상, 혹은 내면의 깊은 호수에 다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러한 감성은 작가가 소개한 문학작품들 안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이 책의 작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등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라스푸틴이나 마야코프스키와 같은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도 중간 중간 인용하는데 그것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전반부에서 시베리아를 이야기할 때는 민주화 이전 지식인 세대 특유의 먹물 냄새가 너무 짙은 것 아닌가 싶었다. 나는 요즘 지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인지 모든 종류의 ‘먹 향’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그러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님의 추천사와 같이 애정은 ‘인식의 최고 형태’이다. 때문에 진심과 열정과 정성을 다하여 시베리아를 인식한 그의 글은 종종 특정 계층만이 해독할 수 있는 언어들이 발견되지만 결코 거북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시베리아를 예찬한 그의 열정에서 자연을 경외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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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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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프랑스소설인가? 이 소설집 속의 첫 소설인 동명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참 프랑스스러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나 아나똘 프랑스 같은 작가들과는 분위기가 엄청 다른데 그들의 책을 읽을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요즘 1Q84로 뜨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특히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는 프랑스적인 느낌같은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의 느낌이다. 물론. 

 바보같이 나는 이 책이 단편소설집인지도 모르고 첫번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은후 '류트'를 읽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스토리가 이렇게 된 것인가 류트 중반이 다 되도록 주인공들의 연관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바보같이.  

열 여섯개의 소설들 전반에 흐르는 자잘한 감성의 조각들, 손수건처럼 날아가버릴 것 같은 허무함. 그러나 읽고난 후에 '급우울'해진다거나 멜랑콜리해진 않는다는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엔 요즘 유행하는 쿨한 감성도 보이질 않고 그렇다고 나같은 소심한 인간들도 없다. 모두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특별히 악랄한 인간도, 천사같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왜 나의 감성을 울리는 것일까.  

(나는 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을 때의 허무함 같은것이 로맹가리에서도 느껴진다. 이들의 소설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있는 것은 우리사회와 우리세대가 얼마나 쓸쓸한지를 말해주는 반증인 것만 같아 나는 이 책을 보면 왠지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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