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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ㅣ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평점 :
이 책을 통해 다시 보는 모차르트
내가 스스로 클래식 음반을 찾아 들었던 첫 시기는 중학교 때였다. 그 때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들으면, 세상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은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면서도 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어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곡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던 한 청소년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작곡시기인 32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이 책을 읽고 다시 들으니, 그가 인간적으로 다시 보이는 듯하다. 또한 그가 왜 당대부터 지금까지 영향력 있는 음악가인지 그저 느낌으로만 알았던 나는 이제 그것을 객관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지식도 함께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그를 천재이거나 경망스럽거나 둘 중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소감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눈을 감은 채 한 부분만을 더듬거리다 이제야 비로소 전체를 조망하면서 그것이 코끼리였음을 알게 된 기분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공정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장치들
‘삶과 음악’이라는 제목이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1756년부터 1791년까지 그의 일대기에 따른 삶의 부분과 장르별 음악의 부분이 교차배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모차르트의 시대를 개괄하고, 마지막에는 18세기의 과학, 문학 등 분야별로 해설한 시대 배경, 책에 나오는 인물과 용어해설이 붙는다.
저자는 책의 전/후반부에서 역사적 맥락을 평이한 언어로 해설해 놓았을 뿐 아니라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악보라는 자료를 완전히 배제하고 음악 CD와 통합적이고 전반적인 곡의 해설로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설명하였다. 특히나 음악에 관해서는, 화성이나 대위법적 특징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피해간 것이 눈에 띈다. 음악과 관련한 유명한 작가, 음악가, 방송인으로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분명히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의 독자를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까지’로 잡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그 원칙을 지켰다.![](http://www.jeremysiepmann.com/images/mozart.jpg)
여기에 덧붙여 이 책의 독자에게는 음악CD 2장과 낙소스 웹사이트 접근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영어로만 되어 있는데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에 비하면 생각보다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 더 넓은 세계가 열리리라는 기대를 안고 접속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용어집이었다. 리토르넬로, 폴리포니 등 음악 전공자들에게도 낮선 용어 뿐 아니라 아다지오나 셋잇단음표 같은 기초적인 음악이론에 대해서도 해설을 곁들였다. 이 정도 해설이면,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 마다 졸지 않은 사람은 저자가 바라는 바와 같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의 삶
모차르트는 1756년, 당시 유명한 바이올린 교본의 저자이기도 음악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신동을 인정받은 그는 소년시절 상당기간 동안 연주여행을 다닌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소년 모차르트는 밝고 조숙했지만 연주든 작곡이든 뭔가 이루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아이였다.
![](http://t1.gstatic.com/images?q=tbn:sqyVQ9tUVXyoxM:http://regonaudio.com/mozart.jpg)
성년이 되면서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잘츠부르크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고 작품성과 상품성이라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작곡가가 되었지만 그의 삶이 평탄치만은 않다. 가족을 중시했던 그에게 어머니의 임종을 혼자서 지킨 것이나 첫 아이를 9주 만에 잃은 일은 가혹하리만치 쓰라린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두려움과 영웅숭배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끝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사실상 의절하다시피 한 것도 그에게는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온 사람이었음에도 경제문제는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연이 성공하면 큰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왕이나 귀족이 원하는 작품이 아닌 자기 세계가 담긴 곡을 쓰자니 안정된 수입을 갖기 어려웠고, 자신의 곡에 대해 로열티를 받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워낙 유행과 장식을 좋아하는 탓에 사치가 심해, 죽어서도 빚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모차르트는 매우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곡을 쓰기 시작하고, 레슨을 하고, 연주를 하다보면 하루가 꽉 차는 일정이었다. 베토벤과는 달리 언제나 연주자의 기량을 넘어서지 않는 곡을 쓰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음악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베토벤이 첫 프리랜서 음악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놀랐던 것은 모차르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틀에 가두는 권력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사실이었다. 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p.134)
스스로만 벗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때까지의 ‘멜로디-반주’라는 틀을 깨고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두 요소의 끊임없는 ‘대화’ 체제를 형성하였고, 오케스트라에서 관악파트를 해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피아노 파트보>
![](http://www.danzaballet.com/userimages/Mozart-Collection03.jpg)
<임종 마지막까지 썼지만 스스로 마무리하지 못한 미완의 역작. 레퀴엠의 악보.>
그는 유럽에 전쟁과 유혈혁명, 난폭한 변화가 잇따랐던 18세기 중후반의 음악가로, 그의 고전파 음악양식 안에도 역사적 맥락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근본적으로 안정과 변화의 교대, 두 개의 주음(key-centres)이 빚어내는 긴장을 토대로, 세력의 대치 상태가 풀리면서 절정에 이르는 유토피아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고전주의 음악양식(이른바 소나타 형식)은 그가 살았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했던 땅에서는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근대로의 전이가 비교적 느리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던 것이다.’(p.9)
<변화와 혼란의 18세기 유럽 . 프랑스혁명(1789)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일어났다.>
이러한 안정과 변화, 두 개의 주음이 빚어내는 긴장은 그의 음악의 오페라적 요소를 논할 때는 ‘대화’라는 요소로 불리게 된다. 거기에 마치 문학작품이나 심리극처럼, 원인과 결과, 진술과 반응이 이루어져 하나의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성격이 묘사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는 대화와 서정성, 성격묘사라는 세가지 요소를 인식하고 듣는다면 더 깊고 흥미로운 그의 음악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와 닮은 꼴,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모차르트는 어떤 면에서든 과장을 극도로 혐오했다’.(p.91)
그러나 그의 사후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떤 면에서든 그의 한 부분(신동, 자기 앞가림 못했던 경망스러운 천재 등)을 과장한 것이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자료가 충분히 많은데다 어느 시대에나 대중의 관심거리가 되는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주제별 접근에 따른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정한 해석이 쉽지 않은 작곡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존에 그려졌던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넘어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주변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일관성을 가지고 그에 대한 공정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엄청난 교육열, 끊임없이 유행에 맞는 옷이나 장식을 구입하는 사치스러움에서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와 아버지 사이, 성년이 된 모차르트의 심리와 같은 부분, 그가 곡을 쓸 때 즐겨 사용하는 음악적 표현상의 특징, 그의 인생 후반부에 깊이 가담했다고 알려진 프리메이슨에서의 활동내용 같은 것들에는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욕구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들어가는 것은 이 책의 기본 목표에 어긋난다. 그것들은 이 책을 통해 모차르트를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독자들의 심화학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이미 모차르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를 공정하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모차르트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매우 좋은,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서론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