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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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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 등 2차대전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2차대전이라는 전쟁과 전쟁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바라보게 해 준다.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하게되는 일들이 있다.
라면먹기. 건강에 해로운줄 알면서도 그 매큰한 맛의 중독성에 먹는다.
새치기. 내가 편하기 위해 다른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다.
스파이. 타인의 정보를 몰래 빼돌리는 건 부도덕한 일이다.
이런 일들에는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대의명분 같은 게 따르기 마련인데 스파이의 경우 국가나 회사 등 상위조직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이 붙는다.  


하워드. W. 캠벨 2세는 2차대전 당시 나치로 가장한 미국 측의 스파이였다. 그는 독일국민을 선동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며 기침이나 말실수 등의 암호로 미국 측에 정보를 전달했다. 캠벨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그 시절 나치의 앞잡이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를 묵과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이 붙었고 ‘돈만 아는 욕심많은 유대인’ 때문이라는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캠벨은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그는 미국을 위한 첩보원이었으니까. 때문에 그의 죄는 일부 감해지기도 한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보면 주인공의 고모인 노수녀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위선적인 사람을 못됐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평생동안 죽을 때까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위선적이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들키지 않고 위선적이었던 사람은 결국 착한 사람의 삶을 산 셈이다.
2차 대전 내내 애국심이 높은 나치의 앞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캠벨. 그는 남몰래 나치의 정보를 빼돌렸지만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충성을 다한 라디오 선전원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러니 그 주변에 그가 혐오할 만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당연하다. 

 
무식한 미치광이 인종차별주의자인 치의학 박사 겸 신학박사 라이오넬 J.D. 존스목사.
진실한 우정을 내세워 캠벨을 음모의 소굴로 끌어들인 소련의 스파이 조지 크래프트.
파문당한 신부이자 성 바울파인 존스의 비서 패트릭 킬리.
일본군 첩보원으로 ‘할렘의 흑인지도자’라고 불리는 윌슨.
독일계 미국인 협회 부회장을 지낸바 있는 존스의 경호원 크랩타우어.
그리고 또 중요한 한 사람. 여전히 형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은 언니를 흉내내어 접근한 캠벨의 어린 처제.  


캠벨을 2차 대전의 앞잡이로 간주하고 죽이려고 드는 뭇 사람들이나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나 캠벨의 ‘감쪽같이 사람들을 속였던’ 과거만으로 그를 평가하긴 마찬가지다.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라고 하면서 캠벨을 이용하려고 했던 소련 스파이 조지크래프트도 역시.
결국 캠벨 곁에는 자신을 속여 이득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 외엔 남지 않는다. 어쩌면 2차대전의 숨겨진 영웅으로 평가 받아야 할 캠벨은 더이상 친구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잡아가 달라고 자수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커트 보네거트의 글엔우리가 평상시에 볼 법한, 그래서 별로 특별나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등장해 그 사람들이라면 응당 할 법한 이야기를 한다. 근데 그게 재미가 있는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엔 유머와 어두운 세상의 이면이 공존한다.  

우리나라로 무대를 옮긴다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항상 개구리 무늬 군복을 입고 다니는 재향 군인회 회장이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목사 쯤 되겠다. 어느날 이들이 일제시대 때 유명한 친일파였던 매국노 이완용을 자기들과 같은 편이라고 여기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완용은 사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의 스파이였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좀 더 익숙한 구도가 된다.  


한국의 실제 이완용은 자신의 일을 후회하지도 않았고 그의 자손들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캠벨은 그와는 다르다. 자신이 한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스스로를 경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결국은 유대인을 아무나 불러 자수하고 나중엔 감옥에서 자살한다.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해야 할까?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던 성실한 남편,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유명세를 떨친 숨겨진 작가(2차 대전 후 누군가 버려진 그의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하여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 2차 대전의 애국심 높은 선전원.
그에 대한 진실은 그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모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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