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품절


"어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어린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해? 나는 나중에 어른이 돼도 이걸 기억하는 어른이 될 거야. 영교 언니와 나는 어른들 틈에서 서로 의지했던 아이들이었어. 우린 우리 세계가 있어. 우린 같이 놀았어. 우린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서로 알아주고 지지해줬어. 영교 언니가 없으니 죽을 거같이 외로워."

나는 죽을 거같이 외롭다는 딸의 손을 잡았다. 어린이 세계, 소녀 세계, 어른 세계, 노인 세계, 너의 세계, 나의 세계, 그런 게 다 있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시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더 무시한다. 존중해봤자 자신에게 불리할 뿐 이득이 될 것은 없기 때문일까.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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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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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테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P31

"언제 돌아오나요?"

"유월이 되면. 아마도."

내가 대답했다.

"유월이 되면. 아마도."

그녀가 다시 내 말을 따라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덧붙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럼 그때까지 전 일요일마다 누구의 눈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읽나요?"

[중략]

나는 미쓰비시 백화점 도서부에서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구입한 뒤, 정희가 말한 부분을 찾았다. 중국인들은 고양이의 눈을 보고 시간을 읽는다는 구절은 「시계」라는 글에 등장했다. 그 글에서 남경의 중국인 소년은 선교사가 시간을 묻자, 대단히 큰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고양이의 흰자위를 바라보면서 서슴지 않고 "아직 완전한 정오는 아닙니다"라고 단언했다. 그 글을 읽어보니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고 시간을 읽은 소년은 정희가 아니라 나였다는게 확실해졌다. 거기 나오는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아름다운 암코양이, 휄린느"라는 구절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암코양이는, 그러니까 정희였던 셈이다.

그 아름다운 암코양이가 곁에서 사라지자, 나는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헤매게 됐다.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P34~35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마냥 어렵더니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대면하게 된 난, '김연수'라는 작가에게 서서히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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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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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점점 망가져가는 도시. 비즈니스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갇힌 사람들.

신문을 한 무더기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소설, 그리고 소설가.

문학은 그런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는 외침이 가득한 소설이다.

 

사실, 이런 식의 현실 비판적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문학판'에서도 거의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문학판'에서 오히려 유기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래도 좋은가. 우리네 삶을 몰강스럽게 옥죄는 전 세계적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발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중략)

내가 뜨거운 삶의 현장인 '저잣거리'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비즈니스 작가 후기 中

 

[본문 속에서]

- 조소는 실패한 자들이 둘러쓴 비열한 자기방어 수단이다.

- 환영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떠날 때에야 비로소 명백해지는 것이 혹 사랑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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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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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표지에 반해 구입하게 된 책. 창피하게도 전경린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알고 있으되, 접해 본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글을 쓰는 분일까 사뭇 궁금하고, 그녀가 말하는 최소한의 사랑은 또 어떤 것들일까 기대를 하게 되었다.

희수는 고독하게 병과 싸우던 새어머니를 보내고 유언처럼 남기고간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 의붓 동생 유란이 있다는 파주로 내려간다. 그녀에게는 많은 사연이 있다. 남편의 새로운 사랑으로 인해 부부는 이미 남남같은 생활을 해 왔고, 그 속에서 지쳐버린 딸은 여행을 핑계로 한국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여행을 떠난다. 동생을 찾기 위해, 혹은 그너머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최소한의 사랑. 그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작은 고리이고, 그것만 잘 지키고 유지하면 평화롭다. 난 이렇게 해석이 되어버렸다.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운 해석이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거대한 욕망을 꿈꾸지 않는다면 혼란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작가의 설명.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혼란마저도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 혼란 속에서 저만의 방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지혜가 필요한 것일 게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상사가 너무 불편해서 사표를 내고 싶다고 하소연한 여직원도 있었어요. 내가 말했지요. 세상에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요. 다른 사람이 내게 불편한 것은 당연한데 불편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본인이 나쁜 거라고요. 우리는 누구나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사는 거니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나쁜 사람이겠지요."

최소한의 사랑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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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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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책은 여러 권 소장하고 있지만 끝까지 읽은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이후 다른 책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원더보이'를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중간에 엄한 짓 좀 하느라 잠시 쉬었더니 그 이후에 읽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앞 부분을 다시 읽으려니 엄두도 안나고 해서 현재는 쉬고 있는데, 이 책은 잠시 쉬었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 그려져 있듯, 이 책은 '날개'가 많이 등장한다. 심연이라는 단어 역시 많이 나오는데, 내 개인적 판단으로 보면 작가는 소통을 이야기 했던 것이 아닐까? 작가 후기에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이라고 당부했지만, 난 솔직히 못 읽은 것 같아 아쉽다.

카밀라가 희재가 되고, 희재가 지은이 되고, 그 희재가 또 다른 희재로 마무리 되는 동안 난 많이 혼란스러웠고, 버거웠다. 항상 어떤 결론을 목표로 책을 읽었던 나로서는 이런 결말이 많이 낯설고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희재는 누구일까. 희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은이는 희재의 아빠를 사랑했을까 등등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데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 없이 끝나는 이 이야기가 난감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들어보기 위해. 심연 속에 묻혀 있는 들리지 않는 그 소리가 무얼 말하는지 찾기 위해서라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P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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