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씨,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렸던 진화적 리부트다.-수 퍼킨스(영국의 작가 겸 배우)
소설로서는 무척 재미있었다. 작가는 의도적인 반전을 배치했고 상당수가 이에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대다수 독자의 사고 흐름을 파악한 영리한 배치였거든. 그러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우려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 많이 고민하다 높지않은 별점을 주게 되었다. 이 책 속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그루밍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범행의 과정이나 피해자의 심리상태, 주변인의 2차가해 등은 세밀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가 결국은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의 소재로 사용된 것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들었다. 소설의 특성상 추리가 아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에서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을때 나는 화가 났다.내가 우려하는 점을 나열하자면,이 소설 속의 남자들은 대부분 납작한 가해자거나 피해자다.여자들은 대부분 입체적인 피해자이자 가해자거나 납작한 가해자다.많고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등장하는데 그들 모두가 가해자이며 그들이 괴롭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범죄를 가한 가해자가 아닌, 연대자이다. 2차 가해를 가장 적극적으로 일삼는 사람들은 가족 중 엄마, 고모, 이웃이나 직장동료인 여성들이다.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의 모습에 매몰되어있는 건 오히려 작가 자신이 아닐까? 그 많은 피해자 중 삶을 일구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은 어디에서 무슨 벌을 받는건지? 자살이나 교통사고 등 그들의 처리 방식 또한 지독히 예스럽다. 또 2차가해자들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무고를 이렇게 사용한 점이다. 무고로 의심받는, 2차 가해자들의 무적 논리를 정당화시킬 수도 있는 소재를 사용했지? 이건 정말 반전만을 노린 작가의 패착이라 본다.이는 대만의 성인지 수준이 아직 한국보다는 낮은건 아닐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똑똑하고 진취적인 사람도 닿아본 적이 없는 곳은 모를 수 있지.아무튼,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