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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쉽고 술술 읽히는 책도 좋아하지만, 난해한 책을 읽는 것도 은근히
좋아한다. 때로는 이 책이 무슨 말을 전하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하지만. 단지 글자를 따라가는 것만도 버겁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재미있다. 때로는 이러한 난해한 텍스트들이 더 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단, 이런 난해한 책들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조금씩 나눠 읽는다.
<구토>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로캉탱이 물수제비를 뜨려다 불현듯 설명할 수 없는 욕지기를 느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욕지기는 로캉탱을 놓아주지 않는다. 때때로 구토가 찾아와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그 욕지기의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구토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 자신을 포함해 이 세계의 모든 존재의 본래
모습, 즉 그것들의 나상과 부딪쳤을 때 느끼는 낯설고 부조리한 감정이다.
(p. 425, 작품 해설 중)
로캉탱은 모든 존재가 쓸데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존재의 필연성을
갖지 못하고 우연히 존재한다. 그는 심지어 때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롤르봉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연구하는 데 몰두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일도 놓아버린다.
나는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롤르봉 씨는 무로 돌아가버렸다.
(p. 227)
롤르봉 씨는 나의
동업자였다. 그는 존재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고, 나는 내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나는 원료를 제공했다. 내가
되팔아야만 하는, 어찌해야 할 수 없는 원료, 바로 존재, 나의 존재를 제공했다. (….) 그는 나의 존재 이유였고,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p. 231)
파리로 가기로 한 로캉탱은 이제 공원을 거닐고, 도서관에 가고, 영화관에 가는 것 이상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존재하는 무언가를 새로 창조하고 싶지 않다. 쓸모없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버겁다.
로캉탱은 파리로 떠나기 전,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부빌에서 즐겨 찾던 카페 랑데부 데
슈미노를 찾고 거기서 돌연 구원을 얻는다. 점원이 로캉탱이 좋아하는 음반을 마지막으로 틀어주고, 로캉탱은 그 노래를 작곡한 사람과 가수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색소폰 가락이
있다. 그리고 난 부끄럽다. 영광스러운 작은 고통이, 모범과도 같은 고통이 태어난 것이다. 색소폰의 네 음. 그것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같아야
해, 박자에 맞춰 고통받아야 해.”
(p. 401)
내게 있어서 그들은
조금은 죽은 이들, 조금은 소설의 주인공들과도 같다. 그들은
존재의 죄를 씻어냈다.
(p. 408)
로캉탱은 자신도 그들처럼 하기로 한다. 그는 음악을 할 수 없으니
책을 써야 하고, 그건 문학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책이어야
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하지만 어떤
역사책은 아니다. 역사는 존재했던 것에 대해 말하는바, 존재자는
결코 다른 존재자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
(p. 409)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놓일 때가 올 테고, 그것이 발하는 약간의 빛이 내 과거
위에 떨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통해 나의 삶을 혐오감 없이 떠올릴 수 있으리라.
(p. 411)
난해한 철학적인 사유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만큼이나, 문학으로 구원받는
결말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구토>가 써진 시대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한 시대였다. 신이 부재하는
시대, 존재는 필연성을 가지지 못하고 우연히 존재할 뿐이나, 모든
것이 정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재즈곡이나 문학에서 구원을 찾는 이야기인 것이다.
완독하기 다소 어렵기는 하나, 사르트르에게 가장 중요했던,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인 만큼 일독할 만 하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