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미소 경기문학 8
채영신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말의 미소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언어의 미소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부이자 소설가지망생인 주인공이, 아들이 건넨 동화책 제목을 보고 한 착각과 동일한 것이었다. 사실 말의 미소달리는 말의 미소라는 뜻이었다. 주인공은 말이 그려진 동화책 표지를 보고 나서도 고집스럽게 언어의 미소라는 뜻을 떠올렸다. 주인공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책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주인공과 같은 착각을 한 뿐 만이 아니라 이 소설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이름도 생소한 매핵기라는 병을 진단받는 장면으로 시작된 소설은 주인공의 집에 찾아오고 있는 혜승은 누구일지, 주인공은 뭘 하는 사람일지, 주인공과 남편의 부부관계에 뭔가 문제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하는 물음들을 떠올리게 하며 계속하여 책장을 넘기게 한다. 물음이 하나씩 풀려갈수록 더욱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인공이 작가지망생이며 여러 번 등단에 실패하고, 문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대목에 이르자, 막연히 작가를 동경하는 내 관심을 강하게 끌었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을 쓴다는 것의 기쁨이나 화려함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계속되는 등단 실패, 자신의 작품이 마구 난도질 당하는 문학원 수업, 등단한 동기의 좌절, 글에 대해 알아갈수록 글 쓰는 일이 환희에서 고문으로 바뀌어가는 힘겨움, 등단 실패라는 큰 스트레스로 인해 망가지는 개인 생활 등, 글을 쓴다는 것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목에 걸린 매실 씨앗을 짧은 비명 같은 단어들과 함께 토해내듯, 자신의 상처와 눈물, 힘겨움을 다 끌어안고 자신의 글 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글쟁이들이란 것도 보여준다.
 
주인공이 소설을 쓰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와 함께, 혜승과 남편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고등학생 시절 심한 왕따를 당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혜승, 항상 모범적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신만의 밀실을 마련하고, 주인공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 안에 틀어박히는 남편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주인공의 인생이었다.
 
주인공은 말한다. 난처한 순간에 그 상황과 관련 없는 사람인 척을 하며 자신이 현실에서 도망쳤듯이 남편도 혼자만의 밀실로 도망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혜승에게 빼앗은 것이 없고 빼앗긴 것은 있으면서도 혜승에게 느끼는 부채감은 혜승의 들려주는 친구의 이야기가 사실은 혜승의 이야기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회피한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주인공의 아이가 가져다 준 말의 미소라는 동화를 희곡으로 각색하는 장면과 혜승과 기숙사에서 지낸 시절에 대한 회상, 문학원에 나가며 소설가지망생으로 분투하는 장면이 어우러지며 읽는 사람을 끝없이 매료시키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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