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라는 작가를 어디선가 들어보았지만, 실제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책에 담긴 짧은 단편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배수아 작가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작가 별로 한 권씩, 아주 작은 책 10권으로 엮어준 덕이니 감사한 일이었다. 한 권의 시집 정도로 얇고, 코트 주머니에도 들어갈 정도로 아담한 책에 실린 배수아 작가의 두 편의 단편소설 만으로 그의 아름다운 문체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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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에는 독립영화 감독의 하루가 그려져 있다.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긴 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운율이 있는 문장들이었다. 주인공 험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가루 두 스푼을 컵에 덜고 따뜻한 물을 부어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장면과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 우연히 손에 잡힌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장면은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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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렇게 잔잔하고 소소하며 아름다운 장면으로 시작하여 독립영화 지원 단체의 비서를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의 절절한 호소와 부탁을 마주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누구도 그를 마주치지 않는 험윤의 하루는 문 앞에 놓여진 쪽지로 인해 누군가의 집 안으로 들어가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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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뒷마당> 역시 뇌수막염에 걸린 경희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가득하다. 경희가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평화로운 장면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예쁜 종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경희가 읽고 있는 책이 사실은 백지의 노트임을 알고 나서 충격에 빠지지만 주인공은 곧 경희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그와 동시에 책을 읽어나가는 나도, 앵두나무와 그네가 있고 담장 사이로 초원이 보이는 아름다운 영국식 뒷마당 이야기에 푹 빠져서 주인공과 함께 경희의 무릎에 손을 올리며 다음 이야기를 조르고 싶다. 가정부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경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당장 방으로 달려가야 함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경희의 처지에 대한 아프고 통렬한 깨달음을 얻을 때, 책을 읽는 나도 비로소 아름답고 기묘한, 두렵기까지 한 이야기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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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페이지 남짓의 아주 얇고 작은 책에 담긴 두 편의 단편소설만으로 배수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등단한 지 오래된 작가여서 이미 많은 작품을 출간했고, 읽어볼 수 있는 작품이 많다는 데 설렘과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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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에 아름다운 작품과 마치 시 같은 문장, 그리고 이 작품을 쓴 배수아 작가에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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