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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2023년 최고의 소설 중 한 권으로 꼽은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짧고도 잔잔한 책이다. 채 200페이지가 안 되는 양에, 시종일관 잔잔한 전원 풍경과 시골에서 보내는 담담한 일상이 펼쳐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부족한 살림에, 아이도 많고, 거칠고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소녀이다. 이 아이는 어느 날, 엄마의 임신 기간 중 잠시동안 친척 집에 맡겨진다. 부모님은 아이를 최대한 많이 맡기고 싶어하고, 데려다 준 아빠는 언제 데리러 오겠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아이의 짐도 내려 주지 않고 우물에 빠지지 말라는 소리나 던지고는 휑 떠나버린다.
그러나 소녀는 이 친척의 집에서 돌보아주는 아줌마와 아저씨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손길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살뜰한 손길, 타박하지 않고 감싸주는 사랑, 따스한 포옹과 스킨십을 경험하며 소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사랑도 아픔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저씨의 손을 잡고는 아빠가 한 번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딘가 슬퍼하는 것처럼.
이 소설의 묘미는 이야기가 단조롭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소녀가 경험하고 드디어 눈뜨는 사랑을 따스히 바라보는 것에도 있지만, 가장 마지막 부분에도 있다. 소녀가 부르는 “아빠”, 그리고 경고하는 “아빠”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클레어 키건은 독자에게 맡겨두고 있다.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느껴지게 하는 소녀의 아저씨에 대한 사랑에 깊은 인상을 받고 독자들은 책을 덮게 되는 것이다.
클레어 키건은 그리 많은 양을 쓰지 않았고, 굳이 많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 간결한 소설로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아이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