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운 세상 속 부서진 나를 위한 책 -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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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 텅을 참 좋아한다. 전작에서 읽은 그의 내향적인 성격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겪은 아픈 일들, 그리고 책을 너무도 사랑해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에 크게 공감이 갔다. 나도 그렇기에. 나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임에도. “목소리가 그렇게 작아서 어디다 써!”와 같은 아픈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그의 이야기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책을 너무 사랑해서 부작용(?)이 심한 사연도 킬킬대며, 또는 찔려가며 읽곤 했다.

그는 주로 카툰을 그리는데, 귀여운 그림체도 상당히 사랑한다. 그의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도 역시나.




그의 최신작인 이 책 표지에는 이런 말이 작게 적혀 있다.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INFJ라니. 나도 INFJ인데. 전 세계 인구의 2%였던가. 희귀하다는 이 유형을 나는 참 많이도 접했다. 주로 글쓰기 모임이나, 혼자 꼼지락거리기를 좋아하는 공예 카페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참도 INFJ가 많았다.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이니까.
데비 텅의 이번 책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서지고 무너진 그가 회복하기 위해 애를 쓴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살 즈음해서 나도 참 힘들었다. 원하지 않은 많은 일들에 치이고, 집에 우환이 겹치고 겹치면서, 나는 참 많이도 아팠다. 역류성 식도염에 과민성대장증후군에다가 피부묘기증이 겹치면서 집에서 칩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놓아버리다시피 했다. 그럭저럭 몸이 회복되기까지 근 두 세달을.

그 힘들었던 시간에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던 시간들이었지만, 데비 텅의 카툰은 눈에 들어왔고, 내친 김에 원서까지 주문해서 원서로 한 번 더 읽었다. 원서로 읽는 이 책에서는 그의 아픔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번역되기 전의 원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만 버려진 것 같은 느낌. 두꺼운 창문이 세상과 나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는 느낌. 폭풍과 어둠 속에서 기어가고 있는 느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나만 이렇게 힘든 지 궁금해하는 기분.
그는 결국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상담을 받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의 우울을 설명할 수 있어졌다는 데에 안도하는 마음. 공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일하면서 상당히 마음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사실 프리랜서 아티스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정말로 원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것.
원하는 일을 하게 되자, 그의 삶이 빛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일이, 밤이 두려워지지 않았다. 내일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산산조각난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을 덮을 때 즈음해서는, 그를 조용히 응원하게 되고, 희망에 부푼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데비 텅과는 조금 다르게 부서졌지만, 내 경우 회복은 그저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 해결책도 비슷한 듯 하다.

마음 깊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절대 무리는 하지 말 것.

어쩌면 데비 텅과 내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비슷하게 무너지고, 비슷하게 회복하는 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고, 내향적이면서 상처가 많고, INFJ이고, 프리랜서이고.
그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이 힐링이면서 영감을 받는 시간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Everything is OK.

이제 모든 게 괜찮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 것이다. 원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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