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하늘 아래, 아들과 함께 3000일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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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를 좋아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조금 결이 다른 작품도 쓴다. <한밤중의 아이>는 방치되고 학대를 당하며 유흥가의 밤을 배경으로 자라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 소설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실 역자 후기였다. 츠지 히토나리는 싱글 파파로 아들을 키우며, 요리도 아주 잘 한다고. 그래서 아마도 이런 소설을 썼을 거라고. 거기다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츠지 히토나리가 음악도 하고 영화도 한다나. 이런 멋진 작가가 다 있을 수가.
갑자기 호기심이 활활 일던 차, 그 이야기를 오롯이 모아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파리의 하늘 아래, 아들과 함께 3000>이다. 심지어 츠지 히토나리는 파리에 살다니.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었다니.
그가 한없이 좋아 보였지만, 사실 이 책은 아픈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아들이 아직 어리던 시절, 이혼과 함께 웃음을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웃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필사적인 사연이었다.
큰 집에 덩그러니 아들과 축 쳐져서 살다가, 그는 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아들과 나누어 먹으며, 맛있냐고 묻고, 맛있다고 대답하는 사이, 아들은 웃음을 찾아갔다.

사람은 말이야, 괴롭거나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땐 지글지글 볶아서 마구마구 먹는 게 좋아. 사람은 배부르면 졸리기 마련인데 말이야, 자고 일어나면 안 좋았던 마음이 싹 다 사라지거든.
(p. 40)


이 책은 아들 나이 열 네 살부터 열 여덟 살때까지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아빠와 살며 몰래 인형을 안고 울던 아이가 장성해서 둥지를 떠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의 기록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아들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파리에서 일본인으로 단 둘이 살며, 아들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 때까지 건강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늘 좋던 아들의 성적 중 영어 성적이 거의 낙제에 가까운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기도 하고, 아들의 여자 친구 일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누구나 하는 고민인 것 같지만, 싱글 파파만의 고뇌도 담겨 있었다.
츠지 히토나리에 대한 팬심으로 읽게 된 책인데,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알콩달콩한 귀여운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은근히 힐링이 되면서, 작은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어떤 경외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츠지 히토나리를 좋아한다면, 작은 존재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작은 존재의 웃음을 보기 위해 힘쓰고 있다면, 즐거움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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