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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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작가를 좋아하면서도 잘 몰랐는데, 올해로 그가 데뷔한 지 50년이다. <은교>, <소소한 풍경>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팬이 되었는데, 벌써 50년이라니. 아직까지 태어난 지 채 50년이 되지도 않은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으나, 아마도 그건 단순한 것은 아닐 듯 하다. 엄청난 감정이 밀려오지 않을까 싶다.

수십 권의 소설을 써왔지만, 돌아보면 단 한 번의 미친 연애로 시종해 온 것 같은 세월이었다.
(p. 4)


그는 데뷔 50년 기념으로 에세이집 두 권 세트를 냈다. 바로 <두근거리는 고요><순례>. <순례>는 특히 히말라야 대장정이나 산티아고 순례 등의 이야기를 담았고, <두근거리는 고요>는 소소한 그의 일상 글을 모았다. 두 권 다 좋지만, 이 책은 박범신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많아서, 알콩달콩 읽으며 박범신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히 삼삼하다.
같이 늙어가는 아내와 눈 밭에서 배추를 캐 내어 된장에 찍어 먹는 일. 산책길에 발견한 결명자 군락을 더듬더듬 다시 찾아가 결명자를 따 오는 일. 종로의 영어 회화 학원에 아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 어려서 그려 본 내 이상적인 노년이 박범신 작가의 책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사로워졌다.
50
년 작가 인생을 돌아보며 그는 문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작가는 홀로이 밀실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꿈을 위해 정진하는 이에게 요즘 유행하는 힐링 문학은 비전에 대한 헌신이라고.
서울과 논산 와초재를 오가며 지내는 그의 삶에서 푸른 것들을 가꾸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밭에 고구마와 옥수수, 가지, 토마토 따위를 심고, 좋아하는 곰취 모종을 사서 심고, 그 잎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일.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의 하루 마저도 푸르러 보였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더라도, 작가의 눈과 손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다다르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그 안에는 일상의 작은 일에서 뻗어가는 작가의 생각과 단상이 녹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랜만에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에세이집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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