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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런웨이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평점 :
AS 안심 결혼 보험. 이제는 결혼도 보험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도서관 런웨이>에 등장하는 이 보험은 결혼도 천재지변처럼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며 만들어졌다. 지금은 도산한 보험회사의 제품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가입할 수 없다. 한 때는 아주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만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는 가능하다. AS 안심 결혼 보험이 인정하는 보험금은 지속 가능한 결혼
생활을 위해 한 소비에 대해서다. 보험사는 호락호락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 결혼 기념으로 시댁의 냉장고를 바꿔 드렸는데 그건 과소비란다. 시댁에
반상을 하나 사드렸더니 그것도 필요 없는 소비란다. 그러나 친정에도 같은 반상을 하나 더 사자, 그건 인정해준다.
기후 특약도 있다. 그건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특약이며, 지구의 환경이 좀 더 청정해진다는 증거를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를 첨부해 제출하면 3천만원을 지급해준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내뿜던 오염 물질이
줄어들어, 조금 지구가 청정해진 지금이 바로 보험금을 탈 기회다.
그렇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바로 보험 약관집에 있는 일련번호 페이지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 약관집 따위 누가 본다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거기다 보험 가입 시 사은품으로 증정된 로봇 청소기 논팽이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이 귀중한 보험 약관집을 고가에 사고 파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보험 약관집이란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약관집으로 보이지 않는다. AS 안심 결혼 보험의 가입자가 나오는
소설 비슷한 것이 약관집의 내용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런웨이>의 주인공 유리는 친구 안나가 갑자기 소식이 없어져서 걱정된다는
미정의 연락을 받는다. 그는 안나의 뒤를 쫓아 AS 안심
보험 약관집을 도서관에서 충동적으로 빌린다. 그리고 AS 안심
보험에 대해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약관집 거래에 나서던 중 조를 만난다. 안나와 유리, 유리의 직장 선배 제이엘과 우연히 만난 조, 안나의 남편이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이후의 사랑을 그린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이 이어질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아프게 보여준다.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p. 259)
AS 안심 결혼 보험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결혼 풍조를 생각하게 하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힘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이 소설이 참 매력적이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안에 실린 윤고은의 프레디 머큐리를 소재로 한 소설 하나가 이 작품으로 나를 이끌었다. 윤고은이라는 작가의 흡인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조만간
또 윤고은을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