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즐겨 읽어도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어렵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해한 시집도 종종 있다. 그런 시집을
읽을 때면, 머리가 아파 오기도 했으니 시집을 선뜻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시를 읽는다. 지금껏 읽어 본 시인들은 나태주, 박준, 칼릴 지브란, 도종환, 이문재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비교적 쉬운 시를 쓰는 시인들을 선호한다.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는 13인의
앤솔러지 시집이다. 앤솔러지 시집을 읽는 것은 처음인데,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각 시인마다 다른 색의 시를 선보였고, 앤솔러지
시집 전반에 걸쳐서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연작으로 보이는 시를 쓴 시인도 있었고, 거의 산문에 가까운 시를 쓴 시인도 있었다. 모두가 십인 십색이었다. 앤솔러지 시집의 장점이라면, 한 시인의 시집보다는 그 다양한 시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시가 있을 법하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 첫 음을 기다리고 있다면,
검은 물 품고 있는 구름을 지나, 저 박명 거슬러
당신이 누워 있는 그늘진 오솔길로 내처 달려갈 수 있습니다.
(p. 53) - 김안, <엘레지>
서로 다른 느낌의 시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내 마음에 들어오는 시구들이 보였다. 아마도 내 마음과 공명했거나, 내 염원을 읽은 듯,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내용을 담은 시들이었던 듯 하다. 때로는
시어를 읽으며 설레는 마음에 들떴고, 때때로 아득한 기분으로 시집을 넘겼으며, 종종 내가 겪은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이 세상에 여지없는 것들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디를 이리 떠도는 것인지
(p. 65) – 김이듬, <이 세상에 없는 것>
겨울도 끝을 향해 가는 2월 말. 13인의
시인이 청하는 곳으로 떠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마도 그 중에 한 두 시인 정도는 당신의 마음을
읽어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