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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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가족들이 모여 설 음식을 먹는 날. 도란도란 식사를 하는 와중에 TV에서 노인 세 명이 모 호텔에서 엽총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그 세 명은 간지, 치사코, 츠토무. 세 명은 오래 전에 직장에서 만나 마음이 맞았고, 한 명씩 퇴사를 하고 회사가 망해버린 후에도 그들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세 노인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그 날을 스스로 정하기로 했다.

그들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그렇게 황망히 떠났다. 호텔에는 유서와 유품을 남겨 놓았고, 그들을 나무 밑에 묘석도 없이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난감해한다.
간지는 암 환자였지만, 치료를 받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고, 아들 도요와 딸 미도리가 있다.하즈키라는 도요의 딸, 간지의 손녀도 있다. 치사코는 딸 로코가 있으나 소원하게 지냈고, 손녀 도우코와 손자 유우키도 있으나 역시 그들끼리는 무척 소원했다. 치사코의 가족은 거의 와해되었다. 반면 츠토무는 가족이 없다. 빚도 있고 재정적으로도 무척 어려웠다. 츠토무는 엽총 자살 후뒷 일을 가와이 쥰이치라는 후배에게 부탁했다.
엽총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이렇게 수많은, 아니 이보다도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 사건을 마주한다. 세 집안의 3대에 걸친 사람들과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츠토무의 지인들이 등장하다 보니, 앞 부분을 읽기가 상당히 버겁다. 이 책은 필히 관계도를 그리고 수시로 확인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일단 등장 인물이 파악되고 나면, 이야기에 상당히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

 

치사코의 유서에 써 있던 말이다.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계셨어요.”

 

간지가 다닌 병원 주치의의 의견이었다.

 

어째서고 뭐고, 나는 이미 끝났으니까.”

 

츠토무가 호텔에서 치사코에게 한 말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떠났다.
반면 아버지의, 엄마의, 선배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 이었다. 눈물을 멈출 수 없는 미도리, 담담히 받아들이며 할아버지의 존재를 죽음 후에 더 잘 느꼈던 하즈키, 소원했던 사이가 조금 가까워진 치사코의 자식과 손주들, 세 사람의 지인들을 모두 모아 송별회를 기획한 가와이 쥰이치.
다소 충격적인 방법으로 세상과 등을 돌린 세 노인이었지만,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그것이 그들이 세상에 안녕을 고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가족들은 물론 힘들겠지만. 앞으로 계속 잘 살아나가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부터 친지들의 죽음을 연달아 목격했다. 빈 자리가 쓸쓸하거나 슬프기도 했고, 우울함을 달래보려 일부러 밝게 살아보기도 했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가 전하는 이 이야기가 죽음을 대하던 내게 찾아 든 오 만가지 번뇌의 답인지도 모른다.

 





    소담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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