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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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다르고, 생소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우리와 다른 그들이 무속 신앙을 믿고, 굿을 하고, 동물을 잡아 바치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미국으로 이주한 몽족은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들의 전통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리아의 나라>는 뇌전증을 앓는 몽족 리아 리의 이야기와 몽족 문화 및 역사를 번갈아 다루며 미국 문화와 몽족의 문화가 충돌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의료 시스템과 몽족의 치 넹이라는 샤먼의 차이를 보여주고, 현대 의료가 어떻게 무자비하고 공격적으로 환자를 가축처럼 다루는지 그 폐부를 들춰낸다.
몽족은 중국에서 살다가 라오스로 이주했으며, 라오스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핍박 받게 되자, 다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수많은 몽족 중 리아의 가족이 있었다. 이주 당시 어렸던 몽족 아이들은 차별과 편견에도 그럭저럭 미국에 적응할 수 있었지만, 이미 성인이 된 몽족은 전혀 적응할 수 없었다. 변기를 처음 본 몽족은 그 쓰임새를 몰라 변기 안의 물이 요리를 하거나 씻을 때 쓰는 물이라고 생각했다니 말 다했다.
몽족은 이주한 나라에 전혀 동화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지키며 그들끼리 모여서, 가꿀 밭과 먹일 짐승을 갖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간섭하지 않는 것까지. 하지만 미국은 나라 전체에 버터를 펴 바르듯 몽족을 이리 저리 분산시켜 그들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몽족은 저항하고 도망가고,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모르는 민족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지정한 거주지에서 다시 이주를 하며 같은 가문끼리 뭉쳤다.
그런 몽족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리아의 부모에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리아를 학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작하는 리아에게 약물을 투여하기 위해 침대에 묶어 놓고,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옷가지를 마구 찢어버렸다. 성별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 대상일 뿐, 객체로 대하는 현대 의료의 민 낯을 낯선 이주민이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리아의 부모는 미국의 의사들을 믿지 못했다. 약의 부작용이 너무나 컸다. 별로 효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약초를 사용하고 굿을 하고, 동물을 바쳐 리아를 치료하고 싶어했다. 미국의 의사들 입장에서는 어이 없는 일 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화였다. 그들은 뇌전증을 영혼을 훔치는 에게 붙들려 쓰러지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뇌전증 환자는 샤면인 치 넹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의 의사들은 몽족의 문화에 관심도 없으며, 그들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리아에게 각종 약물을 사용하고, 약물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는다고 리아의 양육권을 일정 기간 빼앗기도 했다.
현대 의료의 입장에서 보자면 옳은 일을 한 것이겠지만, 몽족의 입장에서는 라오스 정권의 핍박보다 더한 폭력이었다. 리아의 부모는 리아를 가장 아꼈다. 게다가 몽족은 아이들에게 항상 다정하고 잘 대해준다. 함부로 대하면 가 해를 입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리아의 부모는 충실하고 좋은 부모였지만, 문화적 차이와 약 부작용, 투약 능력 부족 때문에 아동학대자의 누명을 쓰고 말았다. 어쩌면 학대는 현대 의료가 몽족에게, 또 리아의 부모에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놀랍게도 의료 역시 하나의 문화임을, 다른 문화 못지않게 전통이나 추측이나 터부에 얽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 15)



리아의 안타까운 투병기와 몽족의 역사를 읽다 보니, 나도 앤 패디먼의 이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무조건 약물을 투약해서 증세만을 가라앉히고 마는 현대 의료. 다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못 볼 꼴이 된다고 해도 그저 생명을 연장 시키기만 하는 의사들. 현대 의료는 환자의 존엄을 생각하지 않는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고, 능욕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리아가 몽족 문화 안에서 살 수 있었다면, 샤먼인 치 넹이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면, 자신의 병을 안고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었다면,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현대 의학 만이 답인가. 약물을 개발한 후 약을 팔기 위해 질병을 만들고, 의료가 하나의 영리 사업이 되어 고가의 검사와 검진으로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인간이 가진 자연 치유 능력보다는 각종 화합물질을 다량으로 인체에 투여하기만 하는,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환자는 줄지 않는 실패한 의료. 과연 인간을 위한 의료인지, 의료를 위한 의료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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