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가 될 뻔했다 - 우울에서 빠져나온 8개월간의 기록 스토리인 시리즈 13
파호랑.호모 그로스쿠스 지음 / 씽크스마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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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다. 그 때 내게 가장 위로가 된 것은 나와 결이 맞는 책이었다. 사실 책에 집중하기도 꽤나 힘들었지만, 내 관심을 끄는 책을 잘 만나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난 후에 난 조금 나아지곤 했다.

파호랑의 <멍게가 될 뻔했다>는 우울증에 걸리고 회복되는 과정, 그리고 다시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삶을 다졌던 경험을 날 것 그대로 써낸 책이다. 우울증에 걸린 것을 멍게가 된다고 표현한 것이 참 재미있었는데, 멍게는 한 자리에 정착하고 나서 뇌를 먹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는 멍게는 뇌를 먹어버린다. 그리고 뇌를 먹어버린, 생각이 정지된, 뇌가 마비된 상태가 어쩌면 우울증을 잘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나도 과도하고 잘 맞지 않는 일을 장기간 하다가 몸과 마음을 다쳤는데, 파호랑도 비슷했다. 너무 과도한 일을 다 해내려고 1년 동안이나 애쓰다가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삶이 맛없어지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웃을 일이 없었다. 잠을 자도 자도 피로했다. 매일을 견뎌낼 뿐이었다.
(p. 31)


그는 게임으로 도피했다. 가족들과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인스턴트 식품으로 식사를 때웠다. 방에는 쓰레기 산이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회복할 의지를 갖게 된 건, 베스트프렌드 두 명이 결혼하는 사건 때문이었다. 결혼식에 가려고 셔츠를 입었는데 맞지 않았다. 마른 체형에 배만 나와 있었다.

보기가 싫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 뱃살은 빼고 죽어야겠다 싶은 마음이 한가닥 일렁였다.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 나를 살렸다.
(p. 82)


때로는 우울증에서 회복하는 계기가 그저 라면이 먹고 싶어서인 사람도 있고, 고야의 퍼스트네임이 알고 싶어서인 사람도 있다. 파호랑의 경우는 뱃살을 빼고 싶어서였다.
파호랑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5분 뛰는 것도 못하다가 9km를 격일로 뛰게 되기까지, 조금씩 거리를 늘렸다. 무리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서서히 적응했다. 그는 뱃살을 뺴는 것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우울증에서도 벗어났다. 가족의 지지와 제대로 된 식사, 도움이 되는 책, 방 청소와 같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그의 회복을 도왔다.
그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8개월 내내 들리지 않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정상 궤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일 하는 말이다.
오늘 뭐하지? 앞으로 뭐하지?’
(p. 159)


회복된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굳히기에 들어갔다. 요가로 호흡을 가다듬고, 잘 자고, 잘 먹고, 쾌변하고, 걷고, 근력운동을 하고, 독서와 글쓰기라는 취미활동을 즐겼다.

이따금 나는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의 고유한 광기와 멜랑콜리, 돌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
한낮의 우울>
(p. 120)


삶을 잘 지켜내려면 기본적인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아팠을 때도,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먹고, 자고, 씻을 시간조차 갖기 힘들었다.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이고, 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틴다고 해도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않으면 결국에는 고장이 나고 만다.
파호랑은 지금 힘겨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그가 도움을 받았던 많은 책처럼. 그의 수기를 읽고 그를 따라 운동과 기본적인 몸 돌보기를 시도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회복될 수 있을 듯 하다. 꼭 힘겨워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우울증을 앓은 경험을 솔직하고 가감없이 묘사했기 때문에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경험을 나눠준 작가와 이 책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읽을 우울한 사람들, 또는 우울한 이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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