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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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장기하를 알게 된 건, 치열하게 석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후배가 이 영상을 꼭 봐야한다며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공연 영상을 틀어줬다. 멀끔해보이는 남자가 미미 시스터즈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룹이 춤을 추는 앞에서 밴드와 특이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근데 그 밴드가 한국대중음악상을 탔다. 이게 뭔가 싶어 떨떠름한 얼굴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영상을 보던 나도 곧 그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장기하가 밴드를 그만 두고 나서, 다음 행보를 고민하면서 쓴 에세이이다. 그리고 이 재능있는 뮤지션은 글도 무척이나 맛깔나게 썼다. 일상의 소소한 일이든, 그의 음악적 고민이나 단상이든,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읽는 사람을 웃음짓게 해주었다,
그는 즐겁고도 해로운 취미를 가졌다. 바로 술마시기. 술 그 자체보다는 술과 어우러지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읽으며 참 뮤지션 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상당한 맥시멀리스트에 가깝지만, 물욕도 별로 없고,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그의 채식 이야기에 묘하게 공감이 되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고 말고와도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p. 79)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 중의 하나인 <싸구려 커피>에 대한 단상 또한 인상적이다. 상당히 독특하고 창의적인 그의 이 곡은, 이제 모두에게 익숙한 노래가 되었다. 장기하는 이 노래가 잘 알려졌기 때문에 공연에서 <싸구려 커피>를 부를 때의 관객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한다. 초창기에 그 곡을 부르면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마지막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즐거움을 얻었고 그건 뮤지션 장기하의 큰 희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그 노래를 알기 때문에 그런 반응은 이끌어낼 수 없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가치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p. 153)


잘 쓴 에세이를 읽는 기분은 상당히 삼삼하다. 대개 가벼운 이야기가 많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문장을 건져올릴 때면,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다 해도 잘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대개는 훌륭한 에세이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모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나는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음악도 잘 만들지만, 글도 잘 쓰는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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