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정세랑 외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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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언니를 좋아했다. 예쁜 언니도 좋았고, 먹을 걸 건네며 날 챙겨주는 언니도 좋았다. 좋아하는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어쩌면, 집에서는 내가 동생을 가진 언니였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집 밖에서 만난 언니들을 통해서 할 수 있어서 그렇게나 좋았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마음 속으로 흠모하는 언니도 생겼다. 나이와 직업과 배경을 떠나서.

<언니에게 보내는 형운의 편지>는 정세랑, 김혼비, 이랑, 오지은 등의 여성 창작자들이 나이나 국적,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언니리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를 모았다. 그 언니는 때로는 일하면서 만나 친해진 조선인 한동현 언니이기도 했고,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한 언니들이기도 했다. 이연 작가는 실비아 플라스에게 띄우는 편지를 썼고, 김효은 작가는 배구선수 김연경 언니에게 팬 레터에 가까운 편지를 적었다. 손수현 배우는 이유 없는 미움에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구하라씨와 설리씨에게 미안하고 고마움을 전해 마음을 아득하게 했다.
세상에 설 자리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앞선 여성과 뒤에 따라오는 여성에게 어떤 연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때로는 자신과 같은 길을 갔던 위대한 여성을 흠모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겪은 끔찍함을 뒤이어 오는 여성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며 손을 건네기도 한다.
여성의 비율이 극히 낮는 분야에서 일해온 나에게는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밀한 연대를 느낀다. 사람마도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들이 어떤 지점에서 힘들지,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무엇을 무릅쓰고 있는지 어쩌면 알 것도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3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가상현실 등 최첨단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이 전하는 메세지가 여전히 유효한 세상. 나 또한 내 앞에서 가시밭길을 헤친 여성을 따라가며, 뒤이어 따라올 미래의 여성들을 위해 여전히 돌멩이와 넘어진 나무 등걸이 가득한 길에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치워주려 한다. 세상의 모든 언니들에게 애정을 담아 무한한 응원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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