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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사로잡은 일상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7월
평점 :
몇몇 에세이스트를 좋아한다. <아무튼, 술>의 김혼비라거나, <아무튼, 떡볶이>의 요조라거나. 또는
싱어송라이터이면서 에세이스트인 오지은이라거나.
얼마 전 우연히 읽은 <하루의 취향> 덕분에
카피라이터 김민철 역시 좋아하는 에세이스트가 되었다.
그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모든 것을 고스란히 잊어버리고 마는 타고난 기억력 덕에
기록을 하게 되었다고. 열심히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쓴 날들에
대한 기록을 그래서 남긴다고. 그 기록의 모음인 이 책을 읽다 보니 그의 몸에 새겨져있을 그의 기억이
참 찬란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도예 공방에서 엉망진창인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낡고 허름한, 세월을 그대로 입은 벽만을 골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 언어 저
언어를 배우다 심지어 라틴어와 희랍어에 진심으로 빠져서 심지어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고,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 그의 몸에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만 같다.
그는 이런 경험을 비옥한 토양으로 삼아 카피를 쓴다. 박웅현 팀장님의 “김훈 같은 게 필요해”, “오스카 와일드처럼 써 봐”, “한밤의 아이들 같았으면 좋겠어” 라는 난해한 주문 앞에서 떠올릴
수 있는 카피가 있도록.
그에게 쓴다는 것은 숙명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힘들고 우울할 때마다 일기장을 꺼내서
글을 쓰고 나서야 그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깨닫는 것처럼. 토시 하나,
조사 하나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도록 밀도 있게 써야 하는 카피라이팅을 통해 좀 더 명확해지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이.
이 글쓰기를 하면서
지친 나를 저 글쓰기가 위로하니까. 저 글쓰기를 하면서 모호해진 나를 이 글쓰기가 다시 또렷하게 만들어주니까.
(p. 276)
그가 기록한 풍성한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역시 김민철의 에세이는
그만의 향기를 풍기며 나를 위로했다. 내게도 허탈한 마음을 채우고, 몸에
차곡차곡 쌓일 비옥한 경험이 생기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