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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붓 - 문학계 거장 100인의 숨은 재능을 만나다
도널드 프리드먼 지음, 박미성.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그림과 글은 같은 충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둘 다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 형식과 성질은 전혀 다르지만, 어쩌면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일인지 모른다.
그림 실력도 일천하고 글을 그리 잘 쓰지도 못하지만, 하루의 마지막에 일기장이나 노트에
아무 글이나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 좋은 문학 작품을 필사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멋진 글은 못 쓰더라도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을 쓰는 기쁨이 더 컸다.
미술이라고는 초등학생 때 미술학원에 다닌 게 다이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을 따라 그리고
나서 완성된 작품을 볼 때의 기쁨은 미술관에서 아무리 유명한 그림을 본다 해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깊숙한 내부에서 나온 것들을 보는 기분은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 없다.
<작가의 붓>은 그림을 그린 작가, 화가이면서
작가인 사람, 정치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약하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 등,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동시에 한 사람들을 총망라했다.
그들이 그린 그림도 실었고 그들의 예술관과 활동 내용, 간단한 약력과 인생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들의 그림은 노트에 그냥 낙서한 것 같은 간단한 드로잉부터 유화, 조각까지 다양했다. 때로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하고, 글을 쓰다
막히면 그림을 그리며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인상적인 인물로는 윈스턴 처칠이 있었다. 정치가인줄로만 알았는데 수준급의 유화를 그렸다. 그가 유화를 시작한 것은 마흔이 지나서였다.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한
그는 <Painting as a Pastime> 이라는 에세이집도 남겼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 같아 원서로 읽고 있다. 아주 논리 정연하게
그림 그리기가 왜 재충전에 좋은지 논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그렸다. 원고의 여백에 인물, 건축물 등이 스케치되어 있다. 그 안에 인물이 생생히 살아있는 듯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어보려 하다가 (상)권
까지만 읽고 더 이상 읽지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책을 펼치고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을 자세히 보고 싶다.
많은 작가들이 그림을 그린 것을 하나씩 보고 있으니, 예술적 재능은 그 형태를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때로는 펜을 들고, 때로는
붓을 들어 자신 안에 차 있는 것을 쏟아내야 했던 것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이 그림을 그렸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세계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묵혀 두었던 드로잉북을 꺼내보고 싶고, 여기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싶어지는 건 덤이다. 훌륭한 자료이기도 하나, 독자
안에도 있을 예술을 깨울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