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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알랭 드 보통은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작가이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소설만 읽다가, <불안>을 도서관에서 들춰보고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사유가 좋았다. 남다른
문장이 좋았다. 무엇보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아주 흥미진진할 수 있음을 그의 글을 보고 처음 알았다.
나를 알랭 드 보통으로, 또 논픽션으로 이끈 책 <불안>을, 산 지 십여 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은 잘 읽지 않고, 빌린 책이나 서평을 써야 하는
도서들만 읽는 버릇이 있어 눈에서 멀어지다 이제야 손이 갔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지위로 인한 불안, 즉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적당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능력주의, 불확실성, 철학, 에술, 정치 등의 영역에 걸쳐 분석했다. 그리고 불안의 원인 및 해법을 도출해 펼쳐 보여준다. 그가 낱낱이
분석하는 지위 불안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산업사회 시대가 되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를 보편적으로 누리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부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점을 지적한다. 바로 주변 사람과의 비교 때문이다. 봉건 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이 명확히 분리되어 서로의 계급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평민은 자신의 빈곤이 당연하고 귀족의 부를 넘볼 수 없어 오히려 평온한 마음으로 가난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며 내가 이룰 수도 있었던 그 일을 이뤄 부를 거머쥔
내 옆의 그를 보며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 82)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의 세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쳐 온 경제가 마비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바로 전에 빚을 내서 음식점이나 카페를 연 사람이라면 이 사태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기대한다. 부자가 되기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우리의 이 요구와 돌변하는 세상 사이에서 지위 불안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바로 돈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또한
어떠한 물건이라도 우리를 영구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멋진 차나 커다란 TV, 고급 냉장고를 사면 당장은 행복해지겠지만, 우리는 곧 그 물건에
익숙해지고 그 물건을 사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는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가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무조건적으로 부자를 숭배하지는 않을 수 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줄여준다. 누구나 죽는다.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은
지위나 돈 보다 더 가치있는 것에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p. 384)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며 지위 불안의 폐부를 드러내는 알랭 드 보통의 사유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여태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우리
안의 커다란 모순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사유를 통과한 지위 불안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는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