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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에 물론 시위도 있었고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스펙을 쌓는 데 열중했다. 취업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회장도 비운동권에서 뽑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학생회장 후보들은 민주주의나 투쟁보다는 우리 안의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다른 문제였으리라.
1978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유시민 작가는 우연히 학회에 가입했다가 선배들에게 필독서 목록을 받고, 독서와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은 선배들이 내심 계획한 학생운동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고, 유시민 작가 개인에게는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공부는 바로 그 학회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이 바로 그 학회에서 선정한 필독서이거나, 선배에게서 전해받은 당시의 금서였다. 또한 그렇지 않은 책이더라도
유시민 작가의 렌즈를 통과한 소설이나 책은 사회 과학서로 탈바꿈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구론>, <공산당
선언>, <유한계급론> 등 어려워보이는 책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으나 <죄와 벌>, <대위의
딸> 등의 고전이나 소설은 읽은 것이 종종 보였다. 그러나
같은 책을 읽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책을 읽은 감상은 나와 전혀 달랐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른 후 복잡해지는 심리 묘사와 충격적으로
시작하는 초반부가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유시민 작가는 같은 책에서 가난을 보았다. 왜 이런 선량한 사람들이 이렇게 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지. 왜
사회 체제는 그것을 막지 못하는지. 과연 예전의 정치인 유시민을 보는 것 같다.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p. 320)
나는 이 고전들의
어떤 특정한 측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 책들과 내 마음이 날카로운 마찰이나 다정한 공명을 일으켰던
접점을 다루었을 뿐이다.
(p. 324)
대부분이 어려운 책이었음에도, 유시민 작가의 경험과 책 내용에 대한 소개를 읽다 보면 나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흥미 있는 책들이 많았으나 가장 인상적인 책은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카타리나 블룸은 파티에서 만난 매력적인 남성의 도주를 돕다가 곤경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이 사건을 왜곡해서 보도하면서 카타리나 블룸과 그 남성에 대한 거짓 정보를 널리 퍼트렸기 때문이었다. 카타리나 블룸은 전혀 그 상황을 바로잡을 수 없었고, 그녀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작가인 하인리히 뵐이 당시 영향력이 있으나 선정적이었던 신문을 상대로 비슷한 일을 겪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 그 신문사에게 전하는 소설로서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동일한 일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의 왜곡 보도는 이미 많은
전례가 있고 언론인의 위상을 떨어트릴 정도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리나 블룸이 당한 것과 동일한 일을 자신이 당한다고 해도 손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TV 뉴스의 이미지를 믿고, 신문의 논조를 그대로 믿어버린다. 설사 그것이 어딘가 수상쩍은 것이라도
해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유시민 작가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책인 것 같다. 사회적인 진보를 역설하는 이 책을 읽고, 민주주의 사회로의 진보를
위해 인생을 불태운 그의 경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들 것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삻을 바꾸어놓았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었겠지만, 그의 영항을 바았던 실제의 내 삶에 나는 불만이 없다.
(p. 319)
나도 책을 좋아하고, 여유가 있을 때마다 탐독해왔지만, 과연
이런 깊이를 가졌던 것인가, 나에게는 인생 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막 대학에 들어간 유시민 작가의 딸에게 주는 이 책을 읽으며 소개된 책들과
유시민 작가의 안에서 어떤 열기를 감지하게 되었다. 그 뜨거운 마음이 나에게도 조금은 옮겨온 것 같다. 지금 세상에 나가는 열혈 청춘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나처럼 조금의 열기가 가슴 속에 싹트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