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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종종 보인다. 휴대폰 하나면 다
해결되니, 디지털 카메라도, MP3도, 아무도 쓰지 않는다. 요즘 스마트폰으로는 팩스도 보낼 수 있고, 프린터와 연결은 기본에, 심지어 자나 거울 같은 기능을 보여주는
앱도 있다. 일정 관리도 종이에 하는 것 보다는 핸드폰 앱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계도 굳이 필요 없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면 된다.
이런 것들 중에는 사전도 있다. 무거운 사전 대신 전자사전을 쓰는 사람이 늘다가, 이제는 휴대폰에 사전이 내장되고, 인터넷에 연결하면 무료 사전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나도 사전을 안 본 지가 꽤 되었다.
<배를 엮다>는 이런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려 하는 겐부쇼보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라는 생각으로 15년 이상을 사전 편찬에
힘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한 필치로 펼쳐진다. 사전 생각에만 골몰하는, 어딘가 이상해보이는 사람들. 오랜 기간 사전을 만들며 나이를 먹어가고, 퇴직하며 자신의 후계자를 찾는 아라키. 이미 고령인 감수자 마쓰모토
선생의 소원은 죽기 전에 <대도해>가 나오는 것을
보는 것.
<대도해> 사전 만들기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겐부쇼보에 의해 여러 번 중단되고 연기되었다. 그러나 사전편집부에서는 다른 사전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도 최대한 작업을 이어갔다.
아라키가 정년 퇴직하면서 스카우트되는 마지메와 <대도해> 사전 편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충원되는 기시베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두 명은 모두 처음에는 사전편집부에 적응하지 못한다. 사전을 사랑하고 꼼꼼하게 정리는 잘
하는 등, 사전을 만들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자신이
과연 사전을 잘 만들 수 있을지, 사전편집부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서히 사전의 세계에서 베테랑이 되어 간다.
어휘채집카드를 항시 쓰느라고 식사를 하면서도 연필을 놓지 못해, 연필로 국수를 먹으려고
하거나, 젓가락을 연필처럼 잡기도 하는 마쓰모토 선생의 에피소드며, 혼잡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두줄로 정리되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정연한 모습을 보기 좋아하는 마지메, 하숙집의
1층 전체를 자신의 책으로 채워버리기도 하는 마지메의 모습 등, 사전에
모든 열망을 담는 이들의 모습은 어딘가 기인의 모습이 보이면서 유머러스 했다.
여기에 사전편집부와는 적성이 맞지 않는 니시오카의 이야기도 겹쳐진다. 마지메가 영입되며
사전편집부에서 선전광고부로 버려졌지만, 니시오카는 여전히 사전편집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사전을 만드는 거대한 작업 사이 사이로 이들의 청춘 시절에 연애 편지를 쓴 이야기, 일
하다 만난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 등 예쁜 사랑 이야기도 끼여 있었다.
감동적으로 끝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시대를 따라가지 않는,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열의만큼이나,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최첨단 기술만을 우러러보는 시대에, 한 번 읽어볼 만한 아날로그 감성을 전해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