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사가 사랑한 수식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평점 :
어렸을 때 국어나 영어 같은 과목보다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했다. 애매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 게 좋았다. 딱 떨어지는 답을 내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여기 수학을 사랑하다 못해 소수와 사랑에 빠지고, 수식의 아름다움에 헌신한 박사가 있다. 수학박사이고 대학 교수였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이 1975년까지만 온전하다. 1975년 이후로는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여태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라 해도 80분이 지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박사의 집에 주인공이 가사도우미로 일하러 간다. 처음에는 박사가 수학공모전에
제출할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말을 걸어, 방해된다고 혼이 나기도 했지만 점차 박사가 건네는 수학 이야기에
빠져든다. 박사는 모든 것을 숫자로 이야기한다. 처음 보는
가사도우미에게 신발 사이즈부터 묻는다. 24라 답하면 박사는 4의
계승이라고 말해주고 전화번호를 물어 576-1445라고 답하면 5761445는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라고 말해준다.
가사도우미 나는 사실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집을 나와 아이를 낳고 나서 계속해서 가사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나 박사의 수학 강의에 빠져들며 역시나 수학과 사랑에 빠지고 박사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박사는 또한 나에게 열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자,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며 박사 집에서 일하는 동안 아들을 데리고 있으라고 한다. 아들이 찾아오자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주고 사랑해준다.
루트와 박사 사이에는 야구를 좋아하고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연결 고리도 있었다. 그러나
박사는 1975년 전에 뛰었던 선수인 에나쓰만을 기억하고 루트는 에나쓰를 모른다. 그러나 나와 루트는 박사가 당황하지 않게 에나쓰 선수가 트레이드되고 은퇴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고 같이
야구를 즐긴다.
가사도우미와 박사 간의 애틋함, 그리고 루트와 박사 간의 따뜻한 사랑, 이들의 우정 사이에 80분의 벽이 있다. 80분 후면 나와 루트는 다시 자기 소개를 해야 하고, 박사는 이미
이들을 잊었다. 같은 말을 몇백번이고 짜증도 내지 않고 되풀이하며 이들은 돈독한 관계를 쌓아간다. 박사는 영원히 이들을 영구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러면서도 이들은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된다.
소설 중간 중간에 나오는 기본적인 수학적 지식과 잘 알려지지 않은 수학적 사실이 소설 스토리와 얽혀 들어가며 박사와 가사도우미간의
애정, 그리고 이들의 공통적인 수학에 대한 사랑과 어우러진다. 박사의
루트에 대한 사랑도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룬다. 결국 루트는 박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불행한 병에 걸린 박사와 이들의 이야기는 슬픔을 남기며 감동적으로 끝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참으로 독창적인 소재와 설정에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였다. 학창 시절 수학을 싫어했던 사람이라도 이 소설에는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