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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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장편만큼은 아니지만, 하루키의 단편도 좋아한다. 기묘하고, 어딘지 알 수 없는 하루키 월드의 느낌을 단편들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에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하루키를 닮았다. 글을 쓰고,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일찍 결혼을 하고, 재즈를 좋아한다. 말하는 원숭이라거나, 이름을 훔친다거나, 자신이 상상했을 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레코드 판을 여행 중에 마주친다거나 하는 기묘함도 역시나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방바람처럼.
(p. 181)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질 이야기들에 기묘함이 얹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집을 읽다 보면, 하루키 자신의 기묘한 체험을 고백하는 에세이집이 아닌가 하는 착각 마저 들곤 한다.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라고 명확히 써 있는 책 표지를 다시 한 번 보고는, 왠지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키 월드의 매력에 빠져 그 세계가 어딘가에 실존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양 사나이라거나, 공기번데기라거나, 기사단장이라거나, 세계의 끝이라거나.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시나가와 원숭이와 맥주를 마시고,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란 레코드판을 상상하자 찰리 파커가 돌아와 잠시나마 보사노바를 연주하고, 좋아하는 클래식을 함께 들으러 다니는 무려 10살 연하의 못생겼지만 매력적인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잠시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에 너무나 매료된 나머지.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그만큼 하루키 월드가 기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하루키의 또 다른 장편 소설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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