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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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술을 잘 하지 못한다. 술을 배웠어야 할 열혈 청춘 시절에는 술을 한 번이라도 마음껏 마셔보도록 허락받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대학원이나 회사에서 강요하는 술 때문에 술을 전혀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여태 술 맛을 잘 모른다. 아주 가끔 책맥이 하고 싶어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지만, 달달한 바닐라 라뗴가 자꾸 생각나고 마니, 술에 관해서는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가 보다. 술 맛도 모르고 나이가 든 게 때로는 아쉽지만, 이 책 만은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깔깔 웃으며 즐겼다.

자타공인 술꾼인 김혼비 작가의 술에 얽힌 에피소드와 인생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나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엄청난 술 사랑에 놀라기도 했으며 아팠던 인생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어쩐지 나는 좀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당장에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너지기 직전의 다리를 가까스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힘내라는 말과 그 비슷한 종류의 말들을 더 이상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런 힘이 없어 누군가의 귀에 가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때로는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쉬운 말밖에 없을지라도, 이런 쉬운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가닿기를, 언젠가 쉬워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소망이 단단하게 박제된 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p. 62)


힘들어도 친구들에게 내색하지 않다가 결국 힘내라는 말 한 마디에 무너져내리기도 하고, 욕에 전혀 소질이 없다가 불법 행위를 하고 성희롱을 하는 데다 직장까지 잃게 한 어이 없는 직장 상사 때문에 찰진 욕이 입에 붙기도 하는 이야기들 사이에서도 술에 관한 사연은 빠지지 않는다.
어찌나 술을 사랑하는지 면세점을 갖춘 배를 타자, 주류 판매대로 가서는 많은 술병들이 달그락달그락 부딪히는 소리를 감상하기도 하고, 첫 술을 따르는 꼴꼴꼴 소리가 듣고 싶어 소주 두 병을 한꺼번에 시키고는, 계속 채워넣으며 그 소리를 듣기도 한다. 심지어는 천생배필도 술 친구에서 발전한 사이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술이 부른 웃지 못할, 그러나 읽으면 누구나 폭소를 터트릴 수 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인것 같다. 그 중 최고는 백일주를 마시고 친구에게 진지하게 말한 너희들이 나에 대해 뭘 알아. 나 사실 배추야. 좀 더 추워지면 나 김치 된다.” 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나처럼 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든, 오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던 사람이든 이 책을 펼치면 바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술이 내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만은 내 취향이다. 언젠가 나도 기분 좋게 취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으로 이미 때문에 한없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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