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하는 벅찬 즐거움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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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책에서 여행과 연애는 20대에 스타트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를 읽었다. 아무래도 난 이번 생에는 망한 것 같다. 여행을 가끔 했지만, 출장을 제외하면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떠난 여행이 전무후무하다. , 기차 여행 무박 2일로 한 것과 부산을 버스로 당일 여행한 게 있기는 하지만, 여행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한 전적이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여행하는 이유를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라고 했다. 책에서 읽고, 영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꼭 거기에 가서 내가 그 땅을 밟아 봐야겠고, 거기에 있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심정이란 말이다. 떄로는 따분함 마저 그 곳에 직접 가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다며 따분했어도 그 곳에 있어야 했단다.
어쩌면 아무 이유 없이, 어떤 맥락도 없이, 특정한 것에 끌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여행도 아무 이유 없이 반드시 그 곳에 꼭 가야 한다고 느끼는 지도 모른다. 집순이인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이끌림이지만. 그렇게 떠난 그 곳에서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p. 234)

하루키가 말하는 여행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무인도 까마귀 섬에 가서 밤이면 섬을 점령하는 무수히 많은 벌레에 쫓겨 하루 만에 돌아와 버리기도 하고, 멕시코 대 여행에서는 식중독에 시달리는 데다가 강도가 종종 출몰하는 지역에서 무장 경찰과 함께 버스를 타기도 했다. 우동 맛기행을 떠나서는 우동이 코로 나올 정도로 우동만 먹었고, 노몬한에 가서는 국경을 넘기 위해 바로 옆 지역을 돌고 돌아 가기도 했다. 미국 여행은 매일 똑같은 호텔, 똑같은 식사, 똑같은 풍경 속에 지루함뿐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의 본질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예측불허의 상황,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자기 자신이 스스로 초래하고 마는 피곤함과 번거로음,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서도 그 곳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인상적인 여행은 수많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던 노몬한 전투의 흔적을 쫒아서 떠난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 노몬한 전투에 대해서 배우며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성인이 되어서 그 곳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여행이라니. 내게도 그런 강한 이끌림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설명되는 이끌림보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서 인생을 사는 지도 모른다.
내 여행을 죽기 전에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방구석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여행기를 훌훌 넘기는 재미도 삼삼하니, 난 이대로 만족하련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면 하루키처럼 훌쩍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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