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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작가 김연수는 소설과 시 모두로 등단했다. 사실 그의 시는 읽어본
적이 없으나, 어째서인지 그의 소설 문장들이 마치 시어처럼 읽힌다. 가끔
아주 진하게 밑줄을 긋고 싶은 멋진 문장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 속의 언어들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아름다운 문장들로 그는 백석 시인의 삶을 말하고 있다. 본명은
기행. 그가 사랑했던 시와 썼던 문구들과 실패한 사랑과 북한 체제 하에서의 좌절과 고뇌를 그리고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유명한 백석 시인의 삶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첫 눈에 반한 처녀와 맺어지게 해 준다던 친구는 바로 그 처녀와 결혼해버리고,
북한 체제 하에서 체제 선전 외의 감성적인 시는 쓰지 못하게 하는 당의 방침 때문에 그는 쓴 시들을 감추어야 했다.
그렇게 한 편의 시를
쓰고 쭉 읽은 뒤, 종이를 찢어 난로에 넣고 그 불꽃을 바라보는 일을 반복하다가 그는 노트에 館坪의 羊이라고 쓰게 됐다. 마찬가지로 그 왼쪽으로 글자들이 쭉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는 보이는 대로 받아적었다. 다 적고 나니 마음에 흡족했다. 그리고
그는 종이를 찢어 난로에 넣었다.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쓴 그 시도 포르르 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p. 207)
그는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변방의 삼수로 파견되어 가축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다. 주변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서희가 매주 들고 오는
초등학생들이 쓴 시를 지도하고, 자신의 노트에 비록 태워질지라도 시를 끄적이곤 했다.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 작가의 말 (p. 246)
어쩌면 김연수 작가는 좋아하는 시인인 백석에게 이 소설을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삶의 이야기이면서도 그가 홀로 지켜왔던 반짝이는 시에 대한 이야기로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작가의 말 (p. 245)
시인의 삶은 힘겹고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 수두룩하게 벌어졌지만,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던 시만이 그를 그답게 했을 것이다. 비록 출판할 수 없을 지라도. 비록 제대로 집필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백석 시인에게 있어서
시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는 김연수 작가의 가슴 안에 있는 시어들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